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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잘한 일
박금선 지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 / 샨티 / 2015년 9월
평점 :
내가 제일 잘한 일 서평
낯선 것을 보면 우리는 가끔 그들도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탈성매매라는 단어에 빠져서 책 표지에 나와있는 그 문장 ‘누구나 살면서 길을 잃어, 한번 길을 잘못 들었다 해서 되돌릴 수 없는 건 아니더라고’ 라는 그 말이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누구나 살면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그 갈림길의 입구가 너무나 사소하고 일상적이어서 그런데도 책의 주인공들이 감당해야 할 몫은 너무 커서 마음이 저릿하게 아팠다.
나는 책과 같이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야 하는 청소녀들의 학교에서 지난 학기 학생들을 가르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나는 지난 십년동안 정규학교에서 혹은 입시학원에서 주로 학교성적을 올리거나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강의를 해왔었다. 경쟁에 지친 학생들, 성공 때문에 스스로를 잃은 학생들, 혹은 너무 치인 나머지 자신감이 사라진 학생들, 제도권 교육이 만든 슬픈 모습들을 보아왔다. 그리고 지난 한학기 새로 만난 이 친구들을 통해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슬픔과 희망을 보았다. 이 책을 보며 나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욱 학생들과 친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 아니라 친구 말이다.
아마도 나와 비슷한 환경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드는, 두 번째 챕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 또래의 세대는 중고등학교 때 IMF를 겪었다. 많은 가족들이 위기속에서 당황했고 갈등했고 그래서 그 안에서 ‘어린애’로 살아야했던 우리는 힘든 시기를 겪었다. 반마다 가출하는 친구들, 가출했다 돌아온 친구들, 그렇게 떠나서 다시 오지 않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낯선 일이 아니었다. 내가 가출하지 않은 것은 순전히 내가 ‘나빠서’였다. 돈버는데 당장 도움이 되지도 않을 중학생, 오히려 부모님 등골을 휘게 할 만큼 앞으로 들어갈 돈이 더 많을텐데 나는 그래도 집에 붙어있었다. 부모님이 다투실 때면 차라리 나라도 사라질까 그러면 집에 도움이 될텐데 그러면 이혼하지 않고 억지로 살지 않아도 될텐데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부모님 당신들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나를 낳았으니 그에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시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서 고등학교까지 나는 집에 붙어있었다. 필사적으로 공부를 했고, 대학에 갔고, 내손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면서 나는 비교적 안전하게 어른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 시절 내가 ‘가출’이라는 선택을 할 가능성은 너무 높았고, 가출을 할지 하지 않을지를 결정했던 것은 정말 작은 차이였다. 나 뿐 아니라 많은 당시의 내 친구들에게도 그러했다.
있지 엄마...... 나는 엄마가 나에게 갖는 집착이 다른 엄마들보다 지나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엄마의 슬픔과 엄마의 괴로움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만은 아니고, 내가 엄마 뜻대로 자라지 않은 배신감이 더 커서라는거지 49쪽
저 말을 나 자신도 얼마나 하고 싶었던가. 책의 주인공 ‘나’는 너무 착해서, 엄마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때, 집에는 이미 자기의 자리가 없을 때, 그때 식구들을 위해서 집을 나가버렸다. 혼자 집을 나서는 그 마음이 어땠을까, 왜 이렇게 착해서 혼자만 힘든 길을 가게 되었을까 차라리 나처럼 내가 괴로운만큼 식구들 너희들도 괴로워보라면서 집에서 버텨보지 왜 이렇게 착할까. 그렇게 나가서는 아주 ‘빡센’ 공부를 하게 된다. 그 공부를 불쌍하다 안됐다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그저 어떤 상황이 있었고,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살아남았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봐라 집나가니 고생이다 하는 말 따위는 정말 쓸모없다. 누구나 자기가 헤쳐나갈 어려움이 있는것이고, 불구덩이에 떨어진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다. 헤쳐나가야 할 고통은 그저 주어진 것이지 잘못해서 받는 벌이 아니다. 웹툰 송곳에 이런 대사가 있다. 우리는 벌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고.
엄마, 또 하나 고백할 게 있는데, 내 안에는 ‘망쳐버리고 싶고 뛰쳐나가고 싶은 괴물’이 살고있어. 진짜야. 예쁜 그림이 있으면 처음에는 그 그림을 좋아하면서 들여다보다가도, 괴물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면서 나한테 이러는 거 있지? 확 찢어버려! 그래서 망가뜨려버려! 아주 없애버려! 65쪽
정상가족이라는 환상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래서 가까운 이들로부터 따뜻하게 보듬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괴물’이 산다. 아니 결핍이 아니라 누구라도 잘 되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과 망쳐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드는 괴물이 있지 않는가. 나의 학생들이 수업을 재미있어 하면서 다음주에는 뭐 해요 선생님! 하고 신나서 이야기하고든 별안간 학교에 오지 않을 때, 화가 나기 보다는 그 마음에 들었을 불안함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 무언가를 준비하다가도 갑자기 연락을 끊어버린 채 지방으로 훌쩍 떠나기도 하는 내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이 아이들은 그런 순간에 얼마나 절박하게 도움을 바라고 있는가
괴물에게 커피를 만들어 줄 수 없을 때는, 선생님들에게 힘든 거 얘기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해.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커피고 선생님이고 다 필요 없고, 무조건 밤거리로 뛰쳐나가고 싶은 때도 있거든. 그때는 선생님한테 뛰어가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해. 나도 기도하고. 그러면 마음이 평화로워 져. 66쪽
책과 마찬가지로 나도, 늘 떠올리면 복잡한 마음이 드는 사람인 엄마에 대한 편지로 마무리를 해보려고 한다.
엄마, 나는 이제 어른이 되었어. 내가 어른이 되어 가장 기쁠 때는 내 10대때와 나와 같은, 그렇게 외롭게 지내는 친구들을 만나는 때야.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서 엄청 신나게 놀아. 학생들은 너무너무 좋아하다가도 갑자기 안오기도 하고 말을 걸다가도 갑자기 새침해지기도 해. 그러면 화가 나냐고? 아니, 나도 그랬으니까 이해할 수 있어. 누군가 나를 사랑해주면 갑자기 겁이 나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 말이야. 그리고 나는 세상에서 내가 가장 받고싶었던 선물을 내 학생들에게 주고 싶어. 기다려주는 것. 다시 돌아오면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받아주는 것. 그리고 수업때마다 친구들이 한 말, 한 행동 다 지켜봤다가 수업 일지에 빼곡하게 써주는 것 말이야. 친구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내가 이런 멋진 행동을 했다고?’하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자기모습 기억하고 용기 얻었으면 좋겠거든.
학생들은 정말 멋져. 그리고 이 책을 쓴 친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겠지? 사람은 누구나 힘든 상황에 있으면 상황을 바꾸기보다는 자신을 포기하거든. 그런데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상황을 바꿔버렸잖아. 그건 자기를 둘러싼 세상을 바꾼거나 다름없어. 그래서 나는 내 학생들도 그리고 이 글의 글쓴이들도 존경해. 그런 사람이 되고싶어.
책이 말하는 자립이 너무나 이상적이어서, 이렇게만 된다면 더할나위 없이 훌륭하겠다 하는 마음과 감동마저 인다. 그러나 실제의 모습속에는 글쓴 학생만큼 스스로를 단단하게 여민 사람도 있지만 내가 본 학생들처럼 여러 가지 관계의 서툼과 문제점을 가진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점차적으로 자립에 성공하는 사람 뿐 아니라 실패해서 자꾸 뒤로 돌아가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잔소리쟁이 여자들과 동거(세번째 이야기)는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희망찼다. 저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의 많은 사람들의 자립과 자활처럼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그래도 괜찮다. 살아서,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가주어서 고맙다.
자립에 성공한 책의 주인공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10대 청소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했더라면 섬을 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륙에 도착하다’의 주인공인 그분들, 마치 한편의 위인전을 보는 듯 한 기분마저 든다. 이들의 용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기를 바란다. 우리 마음속에 언제나 있는 그 괴물이 한번에 떨쳐지는것도, 영원히 이별하는 것도 아닌 끊임없이 그들과 싸워내는 것임을 알고 그 싸울 힘을 주는 자양분처럼 이 책이 쓰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용기있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평범한 감동이 다른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도 공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믿는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이 험난한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혼자서 살아내는 것이 매순간 버거울 때에 힘든 상황을 이기고 살아낸 생존자들의 단단함을 전해받았다. 이제 다 큰 어른인 나는 다른사람의 손을 잡고 걷거나, 팔짱을 끼거나, 누군가 밥에 반찬을 올려주거나 할 기회가 없다. 지난 십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어떤 학생들과도 그런 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새로 만난 학생들, 거리에서의 삶을 스스로 박차고 나와 다시 학교로 돌아온 멋진 친구들은 낯가리는 선생님인 내 손을 잡고 걷는다. 같이 밥을 먹고, 반찬도 올려주고, 같이 노래도 하고 놀기도 한다. 우리가 함께 이제는 서로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짐을 나눠지면서 살아갔으면 한다. 이 책을 쓰신 분들과, 책의 표지 문구처럼 자리에 주저앉지 않고 자신만의 삶의 지도를 펼친 모든 분들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덧. 책 맨 뒤에 성매매 피해자 지원체계 도표가 있는데 현재 청소년 지원시설 중 대안교육기관은 2개소밖에 없다. 더 많은 교육기관과 지원시설이 설립 운영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