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위 - 꿈에서 달아나다
온다 리쿠 지음, 양윤옥 옮김 / 노블마인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서였다. 운 좋게 집 근처의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한 나는, 평범한 고등학교에 가게 된 대부분의 친구들과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지해 가며 무의미한 하루를 보냈었다. 나는 답답할 정도로 좁고 초등학교 수준에 머물러 있는 듯 느껴지는 우리 학교의 도서관이 퍽 좋았었고 (지금에서도 대체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졸업 후엔 다시는 이 곳에 발을 디디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더욱더 잡히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었다. 원체 친구도 없는 편이지만, 그 중 딱 하나, 같이 외고에 진학하게 된 친구에게 물었다. 무슨 책이 재미있어? 그 친구는 내게 시선은 두지도 않은 채 두껍직한 해진 책 한 권을 뽑아 내게 건네며 말했다. 유지니아. 그 책을 빌린 나는 학원에서 예비 고등수학 수업을 듣는 도중에 몰래몰래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이유 모를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옆 자리 남자아이가 눈치챘다. 선생님께 들켰다. 엄마에게 전화가 갔다. 엄마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온다 리쿠와의 첫 만남이었다.

4년이 흘렀다. 수능이 끝났고 나는 대학에 합격했다.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을 하면서 읽은 책은 전부 학술 도서였다. 생활기록부 용도였다. 학교에 나가지 않게 되면서 우리 구의 큰 도서관에 다시 다니게 되었다. 두 대의 버스를 타고 열여섯 정거장을 가야 있는 도서관.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임에도 나는 이 도서관을 좋아했고, 이 도서관에서 올해의 첫 책을 골랐다. 온다 리쿠였다. 망설임 없이, <몽위>를.

꿈을 항상 잊는 편이다. 허구의 글을 쓰는 것을 취미로 삼은 내게 꿈에서 겪는 체험은 창작의 좋은 원동력이 되곤 했지만, 그걸 잊는 게 문제였다. 잠을 자면서 휴대폰 자판을 두드려 꿈을 기록한 적도 있다. (물론 실패했다.) 이런 내게 있어서 `꿈의 시각화, 기록화`라는 상상은 가슴 설레는 공유물이었다. 나만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니구나. 분명 온다 선생님도 꿈을 기억하는 게 서투른 사람일 거야. 온다 리쿠의 상상력은 내게 언제나 공포였고, 손바닥의 땀이었고, 절정이었다. 그것은 <몽위>에서는 박동이 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두근거리는 가슴을 느끼곤 했다. 꿈을 기록하는 것, 그것을 해석하는 직업, 흥미 본위의 대중들과 그 사이에 낀 예지몽을 꾸는 여인. 그녀의 괴로움은, 이기적이게도, 내게는 또다른 흥미로움이었다. 미안할 정도로 그녀의 속내가 궁금하곤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그것을 확인하고는 마지막 몇 장을 다시 읽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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