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0년에 이르자 미국의 1인당 GDP는 중국의 두 배가 되었다. 1870년에는 거의 다섯 배가 되었고, 1913년에는 거의 10배였다. 대공황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혁명, 내란, 일본의 침략, 또 다른 혁명, 기근, 그리고 또 한 차례의 (‘문화‘)혁명처럼 중국이 20세기에 겪은 극심한 고통을 맛보지 않았다. 두국가의 생활비 차이를 고려한 구매력 등가를 기준으로 1968년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중국인보다 33배 부유했다. 오늘날 달러 가치로 계산하면 최대 70대1까지 차이가 벌어진 적도 있었다.

대분기는 여러 방면에서 나타났다. 1500년 세계에서 가장 큰10대 도시는 거의 모두 동양에 있었고 그중 중국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런던의 열 배가 넘었다). 그러나 1900년이 되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10대 도시는 거의 모두 서양에 있고 런던은 아시아 최대 도시인 도쿄보다 네 배나 컸다. 여기에는 지정학도 연관이 있다. 앞서•살펴보았듯 훗날 근대 세계적 제국으로 변모할 열 개 유럽 왕국들은1500년 세계 영토의 20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다. 인구는 16퍼센트, 경제 산출량은 5분의 1을 겨우 넘길 뿐이었다. 1913년이 되자 이국가들에 미국을 더하면 모두 합쳐 세계 영토의 58퍼센트, 인구의57퍼센트, GDP의 74퍼센트(이 중 16퍼센트만이 그들의 식민지 소유였다)를 차지했다. 이때 세계는 서양과 나머지 지역 사이의 거대한 간극으로 특징지을 수 있었고 이러한 간극은 백인종 우월 이론이나 백인이 아닌 나머지 사람들의 발전을 막는 공식적, 비공식적 장애물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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