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재황 옮김, 루이스 스카파티 그림 / 문학동네 / 200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분량은 짧지만 한마디로 말하기 곤란하다.

다만 한 가지 책 중간에 옮긴이의 글을 훔쳐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과연 어떻게 이 글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을지 무지 궁금할 따름이다. 아울러 리뷰를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조그마한 힌트라도 얻지 않았다면 어땠을지...이건 좋으면서도 치명적인 약점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장을 연 순간 나온 프렌치 카프카에 대해서도 읽어보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간단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사회는 사실 '변신' 을 원한다. (세 남자) 사회는 '변신'을 원하지 않는다. (아버지) 그리고 둘 다 의욕적이면서도 적극적이다. 그 둘 사이에 있는 건 여동생과 그레고리. 그리고 사회의 양쪽 모두를 감싸 안으려는 어머니, 관망자 그러면서도 소극자세라 불릴 수 있는 미묘한 상태.
그리고 할멈. 이런 싸움들이 있어야 그 주변의 부수적인 것도 '의미' 즉, 할 말이 주어진다는 것. 
 

그레고리가 죽음으로써, 혹은 그레고리가 변화함으로써 그들은 변했다.

그건 어떻게 보면, 변화라는 건 강제적이건 적극적이건 소극적이건 타의성이건 자의성이건 대가이건 희생이건 작은 계기건 일이 일어났을 때 변화한다는 거다. 퇴보를 하든, 진보하든.


글을 읽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행하는 '행복' 이라고 일컫는 행위가 오히려 그들의 가능성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며, 그들은 '자식을 위해'가 아니라 실상은 그들이 '살기 위한' 것이다. 라는...그것이 사회와 닮아있다는 점.   

만일, 그레고리가 집밖으로 나갔다면. 그가 변화라는 걸 완전히 받아들여, 과거의 것들을 전부 끊고 떨쳐버리고 그 집에서 나갔다면.....

결국 변화는 과거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제까지 간직했던 것들을 던져버리고...안녕을 고하고..새로운 변화에 적응을 하는 것...그리고 그 변화를 쓰지 않으면 그레고리가 벽을 타고 가지 않아 - 그 신기술을 - 그 대가로 아버지의 사과 세례에 맞을 수 있다는 것.

그레고리는 '시도' 라는 걸 해본 사람이었다고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평화로운 거라고.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실패한 거고, 그저 시도라는 것에 위안을 삼는 거라고...나는 왠지 이때 내 자신을 보게 됐고 현재의 내 상태가 그게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한 이런 생각들에 자신이 없다.  내가 좀 더 더 깊이 이 책을 들여다보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아예 작자의 생각을 알 수 있다면...작자는 의외로 단순하게 생각하게 생각하고 이 책을 썼는지도 모른다. 순전히 부모라는 존재를 생각하면서. 그저 읽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책이란, 말이란 읽는 사람에 따라 같은 얘기도 여러 가지로 변화될 수 있으니까. 이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들이 나왔다고 하니...그 다양한 생각들 중에 내 생각이 껴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살짝이라도 걸쳐 있었으면, 그러면 조금은 안심이 될 거 같다.   

마지막으로 이런 책은 거북하다. 뭘 말하는지 알기 어렵고 그래서 확신을 갖기 힘들다. 어떻게 보면 불분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 같고 그러지 않은 것도 같고 처음으로 접해 보았는데 이렇게 글을 길게 남기는 건 처음이고 정리도 명쾌하게 되지 않아서 떠올릴 때마다 희미하면서 거친듯한 면이 남아 껄끄럽고 뭔가가 부족하다는 생각뿐이다. 그러면서도 깔끔한 느낌은 무시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