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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막는 방파제 1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란 옮김 / 새움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어머니의 시선을 통해 본 식민지 현실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 서평
권태로운 삶을 바꾸기 위해 프랑스령 식민지 베트남으로 떠난 어머니.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15년간 극장의 피아니스트로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식민지 관리국으로부터 농사를 지을 땅을 불하(국유나 공유 재산을 개인에게 파는 것)받았다. 그녀는 그 땅을 두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가 산 캄 평원의 땅은 단 5헥타르를 제외하고는 매해 바닷물이 범람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농사가 가능한 5헥타르에는 이미 그들이 살 방갈로를 지어버렸다. 알고 봤더니 그녀의 가족에 앞서, 이미 네 가구가 그 땅을 불하받은 후 파산하거나 죽어버렸다. 식민지 관리국에 뇌물을 찔러주지 않은 탓이었다.
궁지에 몰린 그녀는 통나무로 방파제를 짓기로 결심한다. 그녀는 매해 범람하는 평원에서 겨우 살아가는 농부들 앞에서 방파제만 지으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고, 더 이상 사기만 치는 관리국에 끌려 다니지 않아도 되며, 불결함과 전염병 때문에 태어나는 만큼 죽어가는 수많은 아이들을 방치해도 되지 않는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미처 다 짓지도 못한 방갈로를 저당 잡혀 간신히 은행에서 돈을 대출 받아 모든 재료를 구입했다. 그러나 통나무를 재료로 쓴 데다가 주먹구구식으로 지은 허술한 방파제는 금새 바닷물에 휩쓸려 사라지고 만다.
이제 어머니에게는 자긍심을 지닐 만한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녀는 방파제를 짓기 위해 장부를 뒤적거리며 고민하고, 자식들이 싫어하는 맛없는 섭금(얕은 물에서 먹이를 찾는 다리가 긴 새) 고기의 영양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며, 가끔 과거의 안온했던 나날들을 회상한다. 그리고 그녀의 두 자식, 조제프와 쉬잔은 지독한 더위 속에서 자신을 도시로 데려가 줄 여자 혹은 남자를 기다린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발표한 세 번째 소설이자 첫 번째로 내놓은 자전적 소설인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는 식민지의 궁벽한 시골에서 가난에 내몰린 채 살아가는 세 가족의 애증 어린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이 책과 《연인》, 《북중국의 연인》은 자전적 소설이며 성인남성과 사춘기 소녀 사이의 미묘한 성적 관계라는 비슷한 모티브를 다룬다). 또한 뒤라스 특유의 서정적이고 아름다우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관능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스타일이 빛을 발한다.
부르주아 가족 이미지처럼 안락하고 평탄하게 삶을 살기를 원했던 어머니는 사기와 배신, 가난과 무능력, 자책에 짓눌리면서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흡수해버린 기괴하고 슬픈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방파제에 집착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차피 패배로 끝나버릴 지라 하더라도 단지 숨을 쉬며 살기 위해서 희망이 필요한, 극도의 절망에 몰린 인간의 자화상 그 자체다. 자식들은 방파제에 대한 쓸데없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조금은 미친 듯한 어머니의 품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이 떠나면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 어머니가 죽을 것 또한 알고 있다.
이들의 상황에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가 예쁜 쉬잔에게 접근한, 부유한 남자 무슈 조다. ‘처녀’ 쉬잔의 미모와 무슈 조의 부가 맞교환되면서, 세 가족에게 변화가 불어온 것이다. 소심하고 어리숙한 무슈 조는 쉬잔의 손을 잡거나 그녀를 껴안는 대신 그들 가족에게 샴페인을 대접한다. 암묵적으로 허용된 성매매인 셈이다. 작가는 쉬잔을 그와 결혼시켜서 한몫 잡으려는 어머니와, 쉬잔과 딱 한번이라도 자고 싶어하는 무슈 조 사이의 신경전을 능숙하게 그려내어 상황 자체가 추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도, 그 상황을 둘러싼 인물들의 절박함을 통해 어떤 절실한 감정 또한 전달한다.
무슈 조에게 알몸을 보여준 대가로 축음기를 선물 받고 급기야 다이아몬드 반지까지 얻어온 쉬잔, 혹시 쉬잔이 무슈 조와 성관계를 가진 게 아닌지 의심하면서 쉬잔을 마구 때리는 어머니,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역겹다는 것을 잘 아는 조제프. 이들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팔기 위해 도시로 떠나지만 결코 기쁘지 않다. 돈이 생겨봤자 또다시 어머니가 식민지 관리국, 은행과 서신교환을 하며 화를 내는 지루한 상황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후반부는 시골을 떠나온 조제프와 쉬잔의 성장을 더 비중 있게 다룬다. 조제프와 쇠잔은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고 있기에, 근친상간에 가까울 만큼 밀도 높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이 어머니와의 분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공간은 낯선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의 극장이다. 극장의 낯선 화면에 빨려 드는 행위는 그들에게 유일한 위안이며, 어머니와는 분리된 대도시라는 낯선 시공간이 던지는 충격을 중화해주는 장소다. 한편 어머니와의 분리는 타인과의 성관계로 시작된다. 조제프는 극장에서 알콜 중독인 남편과 함께 다니는, 조금은 지친듯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벗어나도록 만든 원인이 그녀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었다고 쉬잔에게 숨김없이 고백한다.
한편 쉬잔은 극장을 다니면서 결코 상류층 백인들에게는 인기를 끌 수 없는, 가난한 백인 여자인 자신의 처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또한 전 세계를 다니면서 실을 팔러 다니는 어느 성실한 세일즈맨의 구애를 받으면서, 예쁜 외모를 지닌 ‘처녀’인 자신의 상품가치를 확인한다.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사랑한다’고 외치는 무슈 조의 손이나 세일즈맨의 구혼이나 그녀에게는 별 다를 바 없다. 작가는 그들이 머무는 호텔에서 일하는 성매매 여성들에 대해 차분하고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는데, 아마도 쉬잔을 비롯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일시적으로라도 성매매를 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후에 쉬잔은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곳의 유일한 남자인 아고스티와 관계를 가지면서 어떤 변화를 체험한다.
이제 성장한 자식들은 식민지 관리국에 대한 어머니의 외롭고 질긴 투쟁을 조용히 거둬들이고 싶어한다. 이 애증 어린 관계는 어머니가 "난 누굴 위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힘없이 읊조리는 순간 종지부를 찍는다. 조제프는 어머니가 관리국에 보낸 편지를 숨겼다가 쉬잔에게 넘긴다. 그 편지는 식민지 관리국이 어떻게 돈을 불리고 있는지, 식민지에 희망을 품고 건너온 가난한 백인들과 ‘원주민’들을 어떻게 착취하는지를 폭로하고 있다. 식민지 관리국은 절대로 방파제를 짓지 않으며 병원 하나 만들지 않는다. 대신 비포장도로를 깔아서 부유한 백인들이 사냥하도록 만드는 데 급급하다.
쉬잔의 어머니는 결코 식민지의 비참한 현실을 투쟁적으로 비난하는 위치에 서 있지 않았지만, 식민지 관리국에 의해 어이없이 속고 착취당했다는 점에서는 ‘원주민’들에 가깝다. 때문에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는 직접적인 비판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시선을 통해 식민지의 뒤틀린 현실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캄 평원의 무기력한 풍경, 죽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묘사나 두들겨 맞으면서 비포장도로를 건설한 에피소드는 실감을 더해준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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