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학교 - 학교는 어떻게 아이들을 전장으로 내몰았나
이치석 지음 / 삼인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반공교육을 기억하십니까?
《전쟁과 학교》 서평


얼마 전 교육부가 학교를 전시체제에 대비하는 시스템으로 짜고 있었다는 내용의 공문이 밝혀져서 논란이 됐다. 그런데 한국의 학교는 전시체제, 즉 전쟁과 관련이 없는 교육의 산실로 존재한 적은 거의 없다. 지금은 사라진 ‘국민학교’라는 단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국민학교’는 ‘국민교육헌장’과 함께 ‘반공국민’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국민학교’에서 매달 이루어지던 수많은 반공포스터와 반공글짓기 행사들, 그리고 ‘영웅 어린이’로 되새겨지던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학교가 국가주의를 주입하고 전시체제를 대비하는 훌륭한 수행자였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전쟁과 학교》의 지은이 이치석은 학교에 뿌리 깊게 내린 전쟁과 국가의 흔적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의도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밝힌다. 지은이는 이 땅에 처음으로 미션 스쿨의 형태로 근대적 학교가 세워진 이후 학교는 ‘국민 만들기’에 일관하면서 청일전쟁, 러일전쟁, 양차대전, 그리고 한국전쟁에 이바지해왔다고 지적한다. 학교는 철저하게 국가에 의해 국민을 동원하고 나아가서 전쟁에 동원될 군인들을 양성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적 시스템이 그렇듯, 전쟁과 학교의 연관성 또한 식민지 시대로 거슬러간다. 일본은 겉으로는 내지인과 조선인을 같게 만드는 동화정책을 펼쳤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내지인과 조선인이 같아질 수 없는 차별정책이 다분했다. 중일전쟁 이후 태평양전쟁에 돌입한 일본은 군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식민지 조선인들을 군인으로 양성하기 위해 교육 시스템을 개편하고 교과서 내용을 바꾸어 충실한 ‘황국 신민’으로 만들려고 애쓴다. ‘황국신민’은 학교교육이 목적하고 상징화한 대표적인 인간유형이다. 그 결과 수많은 ‘죄의식 없는 악인’들이 탄생되어 전쟁에 참여했다.

‘국민학교’라는 이름도 일제 말기에 탄생한 이름이다. 책에 따르면 ‘국민학교’는 파시즘 교육체제의 완성을 목표로 했다. 당시 학교 풍경은 군대 그 자체였다. 천황경배와 황국신민서사, 애국훈화로 구성된 애국조회시간이 그 예다. 또한 체조, 복장검사, 무도연습 등을 통해 학생들의 집단의식을 강조했다. 또한 강한 남성상과 현모양처의 여성상으로 남성과 여성을 분리해서 지도했다. 특히 황국신민체조는 일본 고유의 무사도를 가르치는 의식으로, 국민정신함양에 매우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별 다른 거부감 없이 일상화된 황국신민의 의식화를 지도했으며 많은 한국학생들은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답게 한일합방을 미화하는 정신 상태를 지니게 됐다.

해방 이후의 학교 풍경도 일제시대의 학교체제를 그대로 계승했다. 남한의 미군정 교육은 내용만 친미로 바꾸었을 뿐 대부분의 교육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또한 미군정은 “영어과목이 바로 친미교육을 상징하며 이것이 바로 미군정의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사회화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며 영어를 제2국어로 삼았다. 이를 기점으로 영어는 대학입시를 위한 중고등학교 필수과목으로 결정되고 학교교육의 핵심위치를 차지한다. 소련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북한에서 탈문맹화가 이루어진 시기는 국가에 충성을 바치는 ‘국민’과 ‘인민’의 종자가 뿌리내리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제 일제의 친일국민은 대한민국의 반공국민으로 계승됐다.

반공교육은 미국에 대한 환상과 북한 공산당에 대한 증오심을 만들어냈다. 특히 반공주의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사라진 것으로 한국인의 집단정신에 매우 뿌리 깊게 남아있다. ‘국민정신교육’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반공교육에서 북한 공산군의 잔인한 짓은 매우 과장되어 그려져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라는 반응을 절로 이끌어낸다. 반공화보전시, 반공포스터 전시, 반공표어 및 계몽, 반공웅변으로 이어지는 수 많은 행사들은 마치 학교가 미래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였다. 특히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는 매우 비인간적이고 반교육적임에도 불구하고 매해 전승되었다. 지은이는 이승복 이야기의 잔인함이 전쟁폭력의 본색을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한편 학교와 전쟁,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된 것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빼놓을 수 없다. 지은이는 양차 세계대전과 교육문제를 통해 한국의 학교풍경을 읽어내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한다. 1차 세계대전은 유럽을 휩쓴 민족주의의 결과물로, 학교 또한 이를 피할 수 없었다. 1913년에 발간된 프랑스의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전쟁 이야기가 판을 쳤다. 모든 역사는 전쟁과 살육을 중심으로 기술되었다. 조국을 위해 피 흘리는 어린이들의 뜨거운 삶이 아동문학에 다수 등장하였다. 특히 당대에 호응이 높았던 ‘영웅 어린이’는 원초적 폭력에 빠진 어린이로, 학교 군사교육의 극치였다. 어린이들은 적을 증오하며 괴물로 간주하는 사명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기치를 내건 히틀러 유겐트가 유명했다. 이들 청소년은 히틀러의 군대와 다름없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실제로 전선에서 학생들은 영양실조에 걸릴 정도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지은이는 이 시기가 ‘학교가 학교로서의 존재 가치를 잃어버린 시기’라고 주장한다. 학교는 새로운 세대를 교육하는 장이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국가가 수행하는 전쟁에 학교가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전쟁이 새로운 세대의 발목을 잡는 비극이다. 이 비극을 멈추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학교와 전쟁의 뿌리 깊은 연관성과 그 잔재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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