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로 가는 길 - 라사의 앞 못 보는 아이들, 개정판
사브리예 텐베르켄 지음, 김혜은 옮김 / 도서출판빗살무늬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시각장애인의 힘을 믿어보라
사브리에 텐베르켄의 《티베트로 가는 길》 서평

티베트 학을 전공한 독일의 한 시각장애인 여성이 티베트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세웠다.

《티베트로 가는 길》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러하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자칫하면 신문의 구석에 실릴 훈훈한 미담기사 정도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티베트로 가는 길》의 지은이 사브리에 텐베르켄의 경험은 결코 미담의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들의 마음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극한다. 시각장애인 스스로의 힘으로 다른 시각장애인들에게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리라는 강한 신념과,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꿋꿋하게 이겨나가려는 의지가 책 전반에서 흐르기 때문이다.

사브리에 텐베르켄은 10살 경에 시력을 잃었다. “사회가 시각장애인은 타인의 도움에 의지해야 하며 동정을 받아 마땅하다는 진부한 관념에 단단히 얽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살지만, 그런 진부한 관념에 경쾌하게 응수할 줄도 아는 멋진 여성이다. 그녀는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일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의 편견에 반대한다.

“나는 소리, 냄새, 바람, 추위, 더위 등을 통해 얻은 모든 인상을 상상력을 총동원해서 바로 아주 구체적인 그림으로 옮겨놓는다.” 그런 그녀의 감각에 대해 사람들이 ‘실제’가 아니라고 평가할 때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눈으로 본 것이 귀나 코, 혀와 피부로 느낀 것보다 더 ‘실제적’이란 말인가?”

‘실제’를 파악하는 지은이 특유의 감각은 티베트라는 생경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시각장애인의 삶을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고산병을 조심해야 하고 말을 타면서 위험한 산길을 지나야 하는 티베트에서 그녀가 겪은 힘든 일들이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그녀가 겪어야 했던 가장 큰 고난은 무엇보다도 장애인 스스로 학교를 세울 수 있는가에 대한 사람들의 의심이었다. 한국도 그렇듯 그녀는 티베트와 독일 양국에서 장애인 운동을 장애인 스스로 하기 어렵다는 편견에 맞서 싸워야 했다.

티베트의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녀가 직접 개발한 점자를 가르치는 것이 그녀의 꿈이었다. 사실 장애인에 대한 일반적인 배려가 상당히 높은 편인 독일에서 태어난 그녀지만, 경제적으로 미래를 보장해주지 않는데다가 장애인을 위한 체계가 여러 모로 부족한 티베트 학을 전공하고 점자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티베트까지 혼자서 찾아가서 학교에 필요한 정책과 지원금을 논의하는 일도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 모든 일을 잘 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 혼자서 그런 사업을 해낼 수 있을지 못미더워” 했다. 유럽의 장애인 협회에서 온 사람들은 그녀가 비전문적인데다가 학생들을 고향에서 ‘분리’해서 기숙학교로 데리고 오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비난했다. 사실 외관상 가족과 격리하는 방식은 문제가 많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시각장애인인 지은이 나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판단이 담겨있다. 지은이는 ‘일반학교’에서 당한 놀림과 괴롭힘으로 인해 자신감을 갖지 못했으며 자기 능력을 발견할 기회를 갖지도 못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티베트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많은 시각장애인 아동이 집에서 방치되고 있는 실정인데다가, 인구밀도가 낮아서 집에서 학교로 통학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녀는 시각장애인 아동이 시각장애인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다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서 사회에 통합되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많은 문제들이 산적했다. 그녀가 가입한 독일의 협회는 그녀가 지나치게 규모가 큰 사업의 재량권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다고 판단하고, 보고서 자체를 왜곡해서 그녀의 성과를 깎아내려 정부지원을 받기 어렵게 만들었다. 티베트에서 학교 일을 돕는 이들은 예산을 빼돌리고 있었으며, 가끔 찾아오는 이방인들은 제멋대로 사진을 찍고 촬영을 해서 그녀를 곤란하게 했다. 심지어 비자 연장을 허가 받지 못해서 티베트를 떠나야 할 상황까지 닥치기도 했다.

모든 고난을 돌파한 것은 지은이 자신의 낙천적이고 끈질긴 성격, 그리고 우연찮게 만나게 된 호의적인 사람들, 그리고 점차 발전해가는 학생들의 몫이었다. 결국 그녀가 시작한 시각장애인 학교는 보다 좋은 학교시설을 찾고, 그녀의 사업에 호의적인 협회와 만나면서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그녀가 이룬 결실들은 장애인의 힘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적 편견을 지우는 하나의 선례가 될 듯싶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 www.ildaro.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