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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 있어요
우오즈미 나오코 지음, 니시무라 쓰치카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20년 6월
평점 :
내 어릴 때는 남자라서(아들이라서) 되는 것이 많고, 안 해도 되는 일이 많았고, 여자라서(딸이라서) 하면 안 되는 것이 많았고 해야 하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늘 어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왜 나는 안돼요?’ 였다.
그런데 우오즈미 나오코 님의 책 ‘하고 싶은 말 있어요!’ 책 제목과 표지를 보면서 단번에 내 이야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히나코, 엄마의 부엌일을 돕고 빨래를 개고, 그래서 집안일도 잘하고 공부도 잘해야 한다고 늘 엄마에게 강요받는다. 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집안일과 학원에 다니고 숙제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과 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놓은 아이.
어렸을 때는 누구보다 좋아했다.
손을 잡으면 기뻤다.
무릎 위에 앉으면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함께 있으면 숨이 막힌다.
화가 나서 밉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나는 나쁜 아이일까? 내가 잘못하는 걸까? 나도 모르겠다. p7
오빠는 빨래를 개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되고 요리를 돕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집에서 자유로운 시간과 집안에서의 느긋함이 주어지지만, 히나코는 집에 오면 이 모든 걸 해야한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해야 하는 일 먼저 하라는 엄마.
그러다 보니 점점 엄마에 대한 불만이 커진다.
어느 날 안방에 떨어진 수첩을 발견하고 그 속에 적힌 글을 보면서 히나코는 점점 더 말을 하고 싶어진다. 자신의 이야기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나쁜 부모는 자식을 보지 않는다.
보고 있다 해도 겉만 보단. 마음을 보지 않는다.
마음을 보지 않으면서 시키고 싶은 건 몰아붙인다.
더욱이 그걸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나쁘다.
부모는 늘 나는 자식을 위해 생각한다. 자식을 위해 살고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다.
아이들은 아직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부모가 하라는 대로 열심히 노력한다.
부모는 자기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다.
자기 자식이기 때문에 서로 잘 알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옳음은 하나가 아니다.
상대의 기분을 소중하게 여기고 존중할 때만 서로를 알 수 있다. 그건 타인끼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부모에게 지배당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길을 걸어가고 싶다. p32
수첩에 적힌 이 글을 보면서 히나코는 깊이 공감한다. 엄마가 몰아붙일 때마다, 혹은 엄마가 옳다는 믿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히나코는 수첩 속의 글에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수첩의 주인인 슈지가 한 말
“네 기분을 다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잘했어. 상대가 몰라준다고 해서 말하지 않으면 시작도 하지 못하는 거니까.”
그리고 히나코는 히나코가 선택한 히나코의 길을 찾아 나선다.
모의고사가 있던 날 히나코는 모의고사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선택한 길
할머니 댁이 있는 미우라 반도의 시골 마을로 간다.
어떤 길을 선택해도 탄탄대로는 없다. 거칠고 굽고 휘어진 길을 만날 것이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선택한 길에는 시련은 있다. 하지만 강요에 의한 탄탄대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구불구불하고 넘어질 수 있는 길은 즐겁게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살아온 길을 되돌아봐도 그렇다
6남매의 다섯 번째, 다섯 딸 중 네 번째, 아들 바로 다음에 태어난 네 번째 딸인 나는 늘 여자라서 집안일 잘해야 하고 고분고분 말 잘 들어야 하고, 무엇이든 아들에게 양보해야 하고, 그리고 공부는 적당히 하라고 강요받았다. 나는 열일곱에 어머니에게 반기를 들었다. 왜 나는 안 되냐고, 나도 공부하고 싶고 대학도 가고 싶다고, 아니 꼭 갈 거라고.
어머니가 원하는 여자의 삶을 나에게 더는 강요하지 말라고,
그렇게 나는 나의 길을 걸었다. 지금의 내 삶은 히나코처럼 선택의 길에서 내 삶을 선택했기에 가능했다.
이 책 ‘하고 싶은 말 있어요!’를 보면서 어린 내 모습이 투영되어서 가슴 아팠지만 당당히 자기의 길을 선택하는 히나코에게 작지만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이 세상에 자신의 의견만 옳다고 믿는 어른에게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상대의 의견을 듣지 않고 내 의견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폭력의 시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