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전집 4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책세상 / 1997년 4월
평점 :
절판


'A. 까뮈'는 스스로 철학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그가 저술한 책 중 철학이란 이름을 빌어 나온 책은 없다. 하지만 『이방인』이나 『시지프 신화』를 읽어보면 그의 철학적 깊이에 감동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이제 그를 한사람의 위대한 철학자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이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이요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중요한 것이란 무엇인가? 공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유용성인가? 아니면 쾌락? 합리적 이성? 그러한 것도 아니라면, 'I.Kant'가 『실천이성비판』에서 말하고 있는 '내 마음에 빛나는 도덕성'도 내 보일 수 있으리라.

하지만, 'A. 까뮈'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적 자살'이다. 이 말은 이 책의 전체에 걸쳐서 '부조리'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으로 서술하고 있다. '부조리'와 '철학적 자살'이란 말은 똑같은 말이다. 인간이 가치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언제나 이성을 준거로 삼는 것이다. 고대로부터 이성은 무너질 수 없는 권위를 인간으로부터 부여받았다. 플라톤 이후로 거의 모든 철학자들이 옳은 것, 합리적인 것을 말하고 그렇게 따라왔던 것이다. 누가 감히 이성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을까? 그러한 이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바로 부조리요, 철학적 자살이다. 'A. 까뮈'는 바른 철학에 반기를 든다.

가치있는 것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가치 있다는 것은 무엇에 의해서 규정되어야 하는지의 검토이다.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우리는 철저하게 부조리해질 필요가 있다. 부조리란 무엇인가? 자신의 정열을 신보다(이성보다) 중요하게 보는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하늘과 보잘 것 없는 충실함 중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하는 물음이다. 분명히 인간의 조건을 벗어나는 의미가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이제껏 저 위대한 철학자들이 명백하게 밝힌 철학적 사색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검증된 이성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것, 확실한 것, 내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가치를 규정하기 위해서 우리는 'A. 까뮈'의 부조리의 준거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종교를 갖고 산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은 대체로 신앙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부조리한 인간도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앙은 없다. 다른 의미에서의 종교인 것이다. 다른 의미에서 행복한 신 '시지프'는 신들에게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끊임없이 굴려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다. 그런데 그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 때문에 다시 산밑으로 굴러 내려온다. '시지프'의 죄목은 너무나 인간적인 것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그에게도 하늘의 것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것 즉, 나에게 진실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지프는 종교를 갖고 있다. 그의 종교는 바위이다. 그 순간 바위는 그의 것이다. 시지프의 말없이 큰 기쁨은 여기에 있다. 신들이 無用하고 희망없는 노동보다 더 끔찍한 형벌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무용하고 희망없는 형벌이 시지프에게는 가장 의미있는 일이 되어버린다.

'I.Kant'는 자신의 인식론을 '코페르니쿠스的 전환'이라고 자찬하지만 그것은 반쪽의 성공이다. 그가 이루어 놓은 새로운 시각은 기존 철학 안에서의 업적이었다. 그런 반면 A.카뮈의 전환은 다른 세계로의 초대이다. 또 다른 철학의 탄생이다. 『시지프 신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큰 깨달음을 준다. 새로운 인식이다.

이것은 두려운 감동이다. 그리고 나에게는 말할 수 없는 너무나도 슬픈 안타까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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