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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들의 힘
공미나 외 지음 / 북랩 / 2025년 5월
평점 :

일주일 전쯤, 집으로 작은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조그마한 사각 상자였지요. 바쁜 일정 속에서 대충 책이겠거니 하고 방 한쪽에 밀쳐두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여유가 생겨 그 상자를 꺼내 열어보았습니다.
뚜껑을 여니 가장 먼저 곱게 접힌 하얀 편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펼쳐보니, 두 장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한 장은 김순이 작가님의 편지로, “박정미 님께”라는 정겨운 인사말로 시작됩니다. 서평단 신청에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책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독자가 무엇인가를 얻어가기를 바란다는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다른 한 장은 서평단 안내문이었는데요, 서평 마감일, 남길 곳, 서평 쓰는 요령까지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여러 번 서평단에 참여해봤지만, 이렇게 정성스러운 안내는 처음이었습니다. 그 정성과 배려에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눈에 띈 것은 작은 간식이었습니다. 비닐팩 안에 쿠키와 다양한 사탕들이 알차게 담겨 있었지요. 낯선 사탕이었지만 며칠에 걸쳐 하나씩 맛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맛도 좋았고, 그 따뜻한 마음이 더욱 인상 깊었습니다.
드디어 진짜 주인공인 책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살구빛 한지에 곱게 싸여 있고, 노끈으로 예쁘게 리본까지 묶여 있었습니다. 정성 가득한 선물을 받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포장을 풀기 전, 그 순간을 사진으로도 남겨두었습니다. 완충재도 종이로 되어 있어, 비닐보다 더 고급스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노끈을 풀자, 파란 하늘 아래 하얀 구름을 바라보며 빨간 벤치에 앉아 있는 여인의 표지가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살아갈 날들의 힘》입니다. 공미나, 김수아, 김순이, 박상림, 박용진, 박호숙, 이은혜, 이창현, 이해랑, 조지연, 최향미, 홍영주. 익숙한 이름들입니다. 반가운 자이언트 작가들이지요.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분들이라 더욱 반가웠습니다.
공저가 출간된다는 소식을 먼저 들었고, 저자 특강도 참여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서평단 모집 공지가 뜨자마자 신청했지요. 책은 일반 공저보다 조금 더 두꺼웠습니다. 12명의 저자가 참여했고, 총 298페이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책이 도착한 이후로 매일 아침, 한 꼭지씩 읽어 내려갔습니다.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는 모두 달랐고, 그 안에 인생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특히 아는 작가들의 이야기라 더욱 몰입할 수 있었고, 그 진솔함에 감동받았습니다.
“아버지의 기대가 느껴졌다. 교사, 의사, 변호사라고 썼다. 방에 들어와 적힌 글자들을 보았다. 가방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었다. 다시 꺼내어 글자 위에 흰 종이를 붙였다. 시인, 수필가, 소설가라고 고쳐 썼다.”66쪽
이 문장을 읽으며, 저 역시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나도 장래 희망란에 ‘교사’라고 썼습니다. 부모님의 바람이 곧 나의 바람인 줄 알았던 시절이었지요. 마음속에는 작가라는 꿈이 있었고, 기자, 교사, 뮤지컬 배우까지 다양한 꿈이 마음을 스쳤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삶이든 꿈꿀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느낍니다.
책 속에는 다양한 인생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직장을 떠난 이야기, 아팠던 시간, 부동산 실패, 결혼, 고난과 극복의 순간들까지. 평범해 보이는 삶 속에도 모두 저마다의 비바람이 있었고, 그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모두가 그러했음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 속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크고 작은 걱정을 하며 산다. 하지만 걱정의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난 일들은 결국 지나갔다. 삶은 걱정과 희망이 늘 공존한다.”270쪽
그렇습니다. 지나고 나면 대부분의 걱정은 쓸모없는 것들이었고, 삶은 늘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갑니다. 이제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을지라도,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낍니다.
“햇살 가득한 거실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강변을 걸으며 새들을 바라본다. 내가 진정 원하는 길을 걸을 때, 행복은 바람처럼 따라왔다.”280쪽
삶의 고통과 짐에서 벗어나 자신을 성찰하고 진짜 원하는 길을 찾아가는 이 문장에서 크게 와 닿았습니다. 내 삶 또한 그렇게 흘러가길, 그리고 그렇게 살아내길 바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과거의 경험이 모여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내가 모여 내일의 나를 만들어갑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요.
《살아갈 날들의 힘》은 작가 12명의 삶이 녹아 있는 소중한 책입니다. 삶이 버겁고 지치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어쩌면 이 책이, 당신의 오늘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