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무늬영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다시 눈을 감는다. 오랫동안 깨어나고 싶지 않다고 느낀다.

그러나 영원히는 아니다. 아직은.

 

그녀의 순수한 얼굴에 호기심과 기대, 염려가 함께 어려 있어, 나는 그만 웃어버리고 만다.

 

물론 힘들지.

그녀는 웃는다.

힘들다고 해봤자 안 해본 사람은 모르고, 해본 사람은 너무 잘 아니까, 그냥 아무에게도 말 안 하게 돼.

 

그가 말했다. 진심으로 하는 후회 같았다. 그 얼굴과 음성에서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꼬집어 말할 수 없으나, 오랫동안 어떤 중심에서 비껴 서서 살아온 사람의 얼굴,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자만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자만. 내 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자만.

 

모든 상황에는 조건이 있다. 우리의 평화는 내 건강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조건이 달라지면 상황도 달라진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만일 내가 그 사고로 죽었다면 우리의 다정함이 더럽혀지지 않았을 테지만, 나는 살아남았다. 나는 지겹도록 아팠고, 내가 지겨운 만큼 그도 지겨워했다. 나를 지겨워하는 그가 나도 지겨웠다.

 

애초에 완전한 타인이었다는 것- 그 한 가지 명료한 사실만이 이편의 강가에 남았다.

 

-노랑무늬영원

 

 

*

대체 그건 무엇을 위한 행동이었을까요. 필사적으로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던 걸까요. 좋은 추억들을 되살리고 싶었던 걸까요. 그렇게 해서라도 그즈음의 일들을 겪지 않은 예전의 나를 불러내려 했던 걸까요. 받아들이기도, 지우기도 어려운 상황과 기억을 그런 식으로 희석시키려 했던 걸까요.

 

-파란 돌

 

 

*

그런 결혼은 왜 갑자기 했던 거야?

상대가 의사라서.

그게 다였어?

내가 속물이라서.

신랄하구나.

근본적으로, 나라는 사람한테는 위대함이 결핍돼 있어.

 

내가 얼마나 비겁한지 너는 모를 거야. 비겁한 사람의 인생이란 긴 형벌과 다름없는 거야.

 

-에우로파

 

 

 

...이 글에 대해선 내가 쓴 리뷰는 없는 반면,

그대로 옮겨온 문구는 잔뜩이다.

아마 내 글로 표현하기에 버거우면서도

마음에 와닿아 남기고 싶은 부분은 많았나보다.

 

'채식주의자'로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작가인

한강의 글을 나도 지금으로부터 2년 전에 읽었었구나.

다른 곳에 썼던 리뷰를 옮겨오며 다시 기억 해 냈다.

'채식주의자'를 살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무거운 소설보다는

당장 나를 안정시켜 줄 편안한 글이라는 생각에

다음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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