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것의 가능성 - 슬라보예 지젝 인터뷰 궁리 공동선 총서 1
인디고 연구소 기획 / 궁리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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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여러분이 진실과 정의를 향한 투쟁을 하고자 하는 경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필요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에서도 이미 충분한 투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는 그들의 그러한 투쟁을 지지합니다. 단지 저는 "불쌍한 러시아인들"로 압축되는 자유주의자들의 우월주의를 싫어합니다.

 

- 아주 슬픈 이야기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대상으로 하는 혁명의 방식은 상대가 최소한의 윤리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이 저지른 온갖 참상에도 불구하고 간디의 방식이 통했던 이유는 적어도 그들이 최소한의 인간 존엄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윤리-정치적 기준이라는 기반을 갖는 체제하에서만 가능하다는 한계 때문에 간디의 방식은 보편화될 수는 없는 것이었죠.

 

- 루소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마르크스와는 달리 굉장히 순진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죠. 루소는 이기주의Egotism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그중 하나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amour-propre입니다. 물론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문제는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타인을 해치기도 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타인에게 불행을 초래하는 것이 자신 고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보다 중요해져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본주의와 결합한 이기주의amour-de-soi를 비난하는 교황의 주장은 어리석다는 지적에 대해 절대적으로 동의합니다. 오히려 요즘 세상에는 이기주의가 충분치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루소는 이기주의를 자기애amour-de-soi와 자존심amour-propre으로 구분했는데, 전자는 있는 그대로의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인데 반해, 후자는 다른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도착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 "중립들의 합은 고립"이라고 말하는 얼슬라는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인 '나'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를 망각하는 순간 고립과 부정의가 생겨난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자신이 지워진 사람은 아니지만 이 부정의함에 대항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사회에 만연한 부정의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 바로 '일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워진 사람들 The Erased 과의 인터뷰 중 얼슬라 세브론의 말)

 

- 폴리투스의 지적대로,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개인이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경제적 권력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고, 지금의 불평등이 훨씬 더 심화되는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정치를 할 수 있으며, 어떤 정치 이론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일까? 폴리투스는 '공동체'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있다. (류블랴나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임인 폴리투스Polituss와의 인터뷰 글 중)

 

 

아하하하... 세계적인 석학, 동유럽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슬라보예 지젝의 책(정확히 말 하면 그와의 인터뷰를 정리한 책)을 읽어냈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위에서 뽑아낸 것들 처럼 나의 이목을 잡아 끌고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솔직히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책 중간에 있는 인터뷰 후기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유일하게 유쾌한 웃음을 선사한 부분. 이사람들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하하)

똑똑하게 태어나지 않았지만, 더이상은 무지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 늦었지만 고군분투하는

 나에게 의미있는 거름이 되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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