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64년 겨울 한국남북문학100선 35
김승옥 지음 / 일신서적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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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데라고는 도시 찾아볼 수가 없고 성실한 척해보이려는 노력만이 일종의 고통의 표정으로서 작자의 얼굴에 나타나 있을 뿐, 그나마도 작자 자기와 흡사한 친구들 앞에서나이다. 마치 자기네들 에게만 고뇌가, 작자가 곧잘 사용하기 좋아하는 고뇌가 있는 것처럼 얘기하고 정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부딪쳐서 투쟁하고 있는 고뇌에 대해서는 작자는 일부러 눈감으려고 하는 듯하다. 작자가 그 자기류의 고뇌라는 것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웩, 정말 구역질이 난다.

작자는 가난하다는 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기 맘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좌우간 가서

붙들고는, 제겐 돈은 없지만 순정은 있습니다, 고 말하며 아마 상대편의 '순정'을 구걸하는 모양인데 작자의 그런 태도란 만약 작자에게 쇠푼이라도 있었더라면, 저희 집엔 자가용도 피아노도 텔레비전도 있으니 저와 결혼해주세요, 라고 틀림없이 말할 놈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마치 백만장자의 손자나 되는 것처럼 바, 술집, 다방에서도 비싼 차로, 자기에게 아무 소용 없는 피리나 풍선을 한꺼번에 열 개씩이나 사고, 버스표 파는 아주머니들께 푹푹 인심쓰고..., 이다.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야말로 '어쩌다가'의 연속이었다. 그는 자기가 지난 날 우연 속에 자신을 맡겨버린 것이 갑자기 역겨워졌다. '거지 같은 자식이었다.' 하고 그는 자신을 욕했다. 손톱만큼이라도 좋으니 나의 주장이 있었어야 할 게 아닌가.    

 -문화부장은 마치 아주 무식한 사람처럼 얘기하고 있었다. 그는 문화부장이 지금 무식을 가장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꾸어 말하자면 이쪽을 무식한 자로 취급하고 나서 자기가 이 무식한 자의 수준만큼 내려가 주겠다는 의도임이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문화부장이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차나 한 잔)

 

 -"전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 서울에서 우리의 이웃 사람으로서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지를 그제야 처음 알았어요. 어쩌면 어리석고 그렇지만 자식들을 위해서 눈을 팔겠다고 나설 만큼 뜨겁고.... 남들이 눈 한 개를 팔겠다고 나설 때 전 눈 두 개 다 팔겠다고 해야 한다는 걸 그때 각오했어요. 우리들이 살아야 할 인생은 그런 각오 없이는 출발할 수 없는...." 내가 그 처녀를 평생의 아내로 결정한 건 그 말 때문이었다.

                                                                                                         (어떤 결혼조건)

 

 

 

책에서 그대로 옮겨온 글이 참 길다. (밑줄긋기에 초과되는 길이라 여기에 옮겼다.)

내 기억이 맞다면 어느 책에선가 강신주씨가 김승옥의 소설에 대해 호평한 것이 기억이 나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아서 집어 들었다. 소설에 크게 감명 갖는 편이 아니라서 의심반 기대반의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작가의 글들의 흡인력은 꽤 놀라웠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서울 1964년 겨울'은 익숙하다 싶더니, 읽다보니 고등학교 때 수능 문학을 공부할 때 지문으로 나왔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소설을 앞 뒤 없이 한 부분만 딸랑 떼 내어 오지선다 문제를 내다니... 참 소설의 본래 의미하고는 근접하지도 않은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당시 문학 공부를 가장 좋아했으니, 나라는 사람은 참.

책을 읽으면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나 고민하는 생각들 그렇지만 내면에서만 맴돌다가 사라지거나 하는 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작가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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