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의 눈 -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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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인간으로서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가 자주 있다. 아니, 어쩌면 그냥 그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묻혀 사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내가 무서워 자꾸 되물으며 벗어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주체적인 나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가에 의해 나도 모르게 산업혁명의 자동화 시스템에 길들여지고 그저 그 한 부분을 차지하는 존재는 아닌 건지. 얼마 전 본 영화 <제이슨 본>을 보면서도 그런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여기, 그와 맥락을 같이 하는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고요한 밤의 눈」(박주영, 다산책방).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게다가 '제6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어서 더욱 흥미를 끈다. 이 책의 저자는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시작으로 2006년 첫 장편소설 백수생활백서로 제30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박주영 작가다.

책 전반적으로 'page'라는 47개의 넘버링과 주요 등장인물, 즉 X, Y, B, Z, D와 부제가 함께 달려 있다. 그래서 '누구'의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 지가 명확하게 밝혀지고 있다. 독특한 이름을 부여받은 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있을까?

D: 실종된 정신과 의사인 언니를 찾아 나선, 어떤 기록에도 올라 있지 않은 일란성 쌍둥이 동생
X: 15년의 기억을 잃은 채 병원에서 깨어나 누군가 알려주는 그대로 스파이의 삶을 살아가는 남자
Y: X의 대학시절 친구 역할을 회사로부터 부여받은 자로서 휴가를 가서도 회사와 승진만 생각하는 사람
B: 젊은 스파이들은 이기적이라며 자신은 대의를 위해 싸울 줄 알았던 스파이였다고 생각하는 중간 보스
Z: 창작기금을 받아야 생활유지가 가능하지만 그마저도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소설가


 

이러한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이 책은 크게 '1부 Happy New Memory', '2부 Happy New World', '3부 Happy New Year' 등 3부로 나눠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첫 페이지부터 '언니가 사라졌'다는 상황을 설명하고 계속해서 짧은 문장들이 이어지며 이야기는 숨가쁘게 전개된다. 굳이 서론을 길게 가져가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나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간결하면서도 지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난다. 그리고 '언니와 나는 일란성 쌍둥이다', '우리가 일곱 살 되던 해 부모가 사라졌다' 등 결론을 툭 던져 놓고는 그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가는 방식이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더해준다.


시작부터 다소 암울한 영화 속 장면들을 연상케 해주는 소설 「고요한 밤의 눈」은 그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이 세상의 거대한 음모를 이야기 한다. 자세한 상황이나 정황 설명이 없는 다소 불친절함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간결하고 속도감이 느껴져 읽기 좋다. 다른 작품들을 모두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하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은 작품이다.


혼불문학상이 선택한 작품, 「고요한 밤의 눈」
어제보다 나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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