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Julian Barnes)

줄리언 반스는 전후 영국이 낳은 가장 지성적이고 재치 있는 작가이다. 만물박사와 같은 지식, 특히 그의 전문 분야인 예술사와 19세기 프랑스 문학 전반에 대한 묘사는 현란하기까지 하다(실제로 반스는 각종 서평지나 미술 잡지에 플로베르나 푸생의 「전문가」로서 기고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이런 정보들을 과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술과 문학에 대한 이러한 깊은 이해를 「작가」의 입장에서 직관적으로, 유머러스하게 요리하고 있다.

1946년 1월 19일 영국 중부의 레스터에서 출생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현대 언어를 공부한 반스는 1969년에서 1972년까지 3년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증보판을 편찬했으며 이후 『뉴 스테이츠먼』과 『뉴 리뷰』 등의 잡지에 평론을 기고하는 한편 문예 편집자로도 일했다. 탄탄하게 다져진 공력을 드러낸 첫 장편 소설 『메트로랜드Metroland』(1980)로 서머싯 몸상(賞)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줄리언 반스는 이후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Before She Met Me』(1982), 『플로베르의 앵무새Flaubert's Parrot』(1984), 『태양을 바라보며Staring at the Sun』(1986),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A History of the World in 10 1/2 Chapters』(1989), 『내 말 좀 들어봐Talking It Over』(1991), 『고슴도치The Porcupine』(1992), 『잉글랜드, 잉글랜드England, England』(1998), 『사랑, 그리고Love, Etc.』 (2000), 『아서와 조지Arthur & George』(2005) 등의 장편소설과 단편집 『크로스 채널Cross Channel』(1996), 『레몬 테이블The Lemon Table』(2004)을 비롯해 수필집과 회고록을 여러 권 펴냈다.

역사와 진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들을 진지하고도 독특한 시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놀랍도록 흥미로운 작품들을 계속 발표하고 있는 반스는 영국,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들을 연이어 수상함으로써 그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1986년 프랑스 메디치상, 같은 해 미국 문예 아카데미의 E. M. 포스터상, 1987년 독일 구텐베르크상, 1988년 이탈리아 그린차네 카부르상, 1992년 프랑스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1993년 독일의 FVS 재단의 셰익스피어상, 그리고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 국가 대상 등을 수상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는 이례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1988년 슈발리에 문예 훈장, 1995년 오피시에 문예 훈장, 2004년 코망되르 문예 훈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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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터파크)

 

 

 


 

 

마치며

 

유학을 하느라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 시간들은 여전히 내게 독특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의 시간들 가운데 단절되어 있었던 시간, 그러나 너무나도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 혼자라 외로움에 힘겨웠던 기억도, 그러면서도 같은 또래끼리 서로 위로해주며 힘이 되었던 참 소중했던 시간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의미있는 몇몇 사람들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몰래 숨겨두었던 그 날들의 일기장을 펼쳐보게 되었다. 새록새록 기억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이런 적이 있었나?'라고 할 정도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일들도 많았다.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생각했었나?', '어, 이게 아닌데?' 하는 내용들도 보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썼던 일기장을 들춰 볼 때면 내 일기장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리고 우연히 꺼내보게 된 학창시절 성적표는 내게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기억의 왜곡 속에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삭제한다고도 한다. 나의 행동이,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 경우도 있다. 정말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그 종류와 크기가 좀 다를 뿐, 우리는 이와 같은 일들을 대부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스)는 바로 그러한 우리의 착각과 사고의 왜곡, 그리고 인간의 조건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영국의 대표적 작가로 손꼽히는 줄리안 반스가 쓴 스릴러로 영구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 2011년도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상의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텔라 리밍턴은 당시 시상식장에서 이 책이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깊이를 드러내는 명작이며 영문학의 고전이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러한 말들이 내게도 적용되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저자인 줄리언 반스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현대언어를 전공했으며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옥스퍼드 영어사전] 증보판을 편찬했다. 그래서인지 언어구사력이 남다르다. 번역이라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느껴지는 깊이가 다르다. 특히 대화체에서 두드러진다. 원문을 기준으로 150페이지 분량의 경장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자는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 고로 나는 이 작품이 삼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리뷰를 보니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난 후 책을 덮은 것이 아니라 맨 앞으로 되돌아갔다는 말을 많이 했다.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서들을 보면 한번 쭉 읽고 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소설, 특히 추리소설과 같으 장르는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중간중간 다시 읽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하다. 나 역시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시 앞으로 가서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고야 말았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토니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 즉, 에이드리언, 베로니카,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와의 관계 등을 통해 현재와 40년 전 과거를 되짚으면서 드러나는 진실들이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학창시절에 같은 반으로 전학 온 에이드리언의과의 만남에서부터 그의 자살까지 과거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부로 넘어오면서는 40년의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주인공 토니 앞으로 배달된 에이드리언의 유품을 받으면서 일어나는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자살과 베로니카와의 만남,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의문들을 풀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이 무심코 보낸 한 통의 편지가 엄청난 결과들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에 대해 에이드리언이 라그랑주를 인용해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이 책 전반에 흐르는 저자의 생각들을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다. 허태균 교수의 「가끔은 제정신」이라는 책을 보면 프롤로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많은 것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착각하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이 착각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그 착각을 계속하긴 어렵다.

반대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착각이라 밝혀질 때까지,

모든 믿음을 진실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모든 기억을 100% 온전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번쯤은 나의 삶을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은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가상의 그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나에게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 그래.'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리고 정말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출처: 인터파크)

 

 

 


 

 

 

진실인가 착각인가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스) -

calamis

(http://calami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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