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보는 서양사 만화라서 더 재밌는 역사 이야기 1
살라흐 앗 딘 지음, 압둘와헤구루 그림 / 부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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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학문이 가진 여러 딜레마가 있지만, 그래도 최근에 왈가왈부하는 지점을 하나 꼽자면 ‘역사의 대중화’가 아닌가 싶다. 상충하는 관점들을 대략 요약해 보자면, 학인들의 입장에서는 엄밀하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설명하게 될지도 모르는 현상이 우려스러울 것이다. 또 너무 자극적인 부분만 다루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이 생길 것이다.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저자의 전문성이 어떤지 의심하게 되고, 역사가 주는 지루한 이미지에 거부감을 미리 갖기도 할 것이다.

이래저래 복잡한 부분을 긁어 주는 책이 나타났다. <전쟁으로 보는 서양사>는 누구나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만화에 밈과 전쟁사를 적절하게 섞었다. 물론, 욕설이 난무한다는 점에서 아동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철저히 성인(그중에서도 커뮤식 말투에 익숙한) 독자의 니즈에 맞춘 셈이다. 글작가와 그림작가는 둘 다 사학과 전공생이 아니지만, 사학과 학부생들의 도움을 받아 고증에도 신경을 썼다고 하니 시중에 나와 있는 흥미유발 역사 컨텐츠 중에서는 나름 전문적이라고 봐도 괜찮아 보인다.

표지에는 가장 핫한 정치 지도자인 푸틴이 ‘가질 수 없다면 부숴버리겠어’라며 미국의 1차대전 참전 독려 광고인 ‘I Want You For U.S.A Army’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양반은 참전 독려가 아니라 징집인 게 문제지만. 아무래도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인 만큼 러-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언급은 앞부분의 4컷 만화가 끝이다. 푸틴만 보고 러-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를 기대하신 분은 뒤로 가기. 그렇지만 푸틴을 풍자하는 4컷이 빠졌으면 아쉽긴 했을 것 같다.

이 책과 풍자는 분리하기 어렵다. 애초에 저자 서문에서도 밝혔듯 책에서 등장하는 전쟁은 대부분 지휘관이 멍청한 판단을 하거나, 아주 어이없는 일로 군대를 진창에 처박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캐릭터들은 실제 인물의 얼굴을 따왔으나 표정을 우스꽝스럽게 짓는다던가, 소위 말하는 ‘킹받는’ 표정을 지어 웃음을 자아낸다. 말투에는 욕설이 뚝뚝 묻어나오고 인물들의 관계는 가깝게 과장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는 외국 사이트에서 유행하던 컨트리볼 만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독자들은 ‘트롤러들 하는 짓 참 뭐같다’하며 비웃을 수도 있고 ‘저런 사람들 때문에 대체 몇 명이 죽은거임’이라고 반응할 수도 있다.

책에서 눈에 띄는 또 다른 특징은 커뮤니티의 댓글을 각 장 맨 앞에 붙여 놨다는 점이다. 그냥 기대감과 재미를 표현하는 댓글들도 많았지만 특히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밈으로 역사를 다루다 보면 실제 사람과는 관계없이 인물에 대한 이미지나 평가가 왜곡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댓글이었다. ‘역사의 대중화’에서 중요한 소비축을 차지하는 게 역덕이니 이런 식의 자기반성(?)도 일어나는가 싶었다. 이 댓글은 정확히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적하기도 한다. 밈으로 잘못 알려진 인물의 평가를 수정하게 만들지만, 다른 곳에서는 ‘치질 나폴레옹’ 짤이 만들어져 돌아다닐 수도 있지 않은가.

이외에도 밈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유머 코드가 ‘그게 뭔데 십덕아’로 받아들여질 여지도 있다. 나 역시 중간 몇몇 유머장면은 원본을 몰라서 그냥 넘어가기도 했으니까. 달리 말하면 이 책의 독자층이 20-40대 인터넷 세대에만 한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만화가 커뮤니티에 연재될 때에는 댓글이 있어 역덕들이 떡밥을 물고 신나게 놀았겠지만, 책은 댓글 기능이 없으므로 만화의 재미 자체만 보고 독자를 끌어 모아야 할 것이다.

처음 읽을 당시에 피식피식 웃으며 1시간만에 후루룩 읽었으니 재미는 보장된 편이다. 다 읽고 나서 실질적인 전쟁의 역사가 담겨 있지 않아 아쉽다거나, 전쟁을 가볍게 다루어도 되는가 등등의 생각들이 남겠지만 만화의 본질적인 목표인 재미를 충족했으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218252)에 응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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