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우리의 가장 큰 협력자 중 하나는 바로 교회다. 오해는 말도록. 내가 말하는 교회는 우리가 보는 바 영원에 뿌리를 박고 모든 시공간에 걸쳐 뻗어나가는 교회, 기치를 높이 올린 군대처럼 두려운 그런 교회가 아니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런 광경은 우리의 가장 대담한 유혹자들까지도 동요하게 만들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간들은 그 광경을 전혀 보지 못한다.

원수는 인간들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인간 앞에 목표를 세워 놓고서도 단순한 감정이나 습관을 이용해서 끌고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지. ‘제 힘으로’ 해 내도록 내버려 두겠다는 게야. 바로 이 점이 우리에겐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위험도 따른다는 걸 명심하도록. 처음에 찾아오는 무미건조함만 성공적으로 이겨내면 인간들도 점차 감정에 휩쓸리지 않게 되고, 우리는 그만큼 유혹하기 힘들어지니까.

이런 질문만 떠오르지 못하게 하면 돼. ‘나 같은 사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옆에 앉은 저들의 다른 결점만 보고 그들의 종교가 위선이자 인습에 불과하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머리가 아무리 떨어지기로서니, 그렇게 당연한 의문이 떠오르는 걸 막는다는 게 도대체 가능한 일이냐고 묻고 싶겠지. 하지만 웜우드, 가능하다. 가능하고말고! 우리가 적당히 주물러 주기만 하면 그런 생각은 간단히 막을 수 있지. 원수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아직 진짜 겸손을 배웠을 리 없거든. 무릎을 꿇고 앉아 죄를 고백한다 한들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 하는 것에 불과해. 사실 마음 밑바닥에서는 이렇게 회심까지 해 두었으니 이만하면 원수의 장부에 상당량 초과 액수를 달아 놓은 셈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는데다가, 이렇게 교회에 나와 별 볼일 없으면서도 ‘잘난 척하는’ 이웃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겸손이요 선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구. 그러니 이런 심리상태를 되도록 오래오래 유지하도록 신경 잘 쓰거라.

원수는 마음 중심으로부터 바깥쪽으로 공작을 해 나가면서 환자의 행동을 새로운 기준에 맞추어 변모시킬 테니, 그 노인네를 대하는 환자의 태도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러니까 발빠르게 선수를 치는 게 좋겠지.

내가 맡은 환자 중에는 아내나 아들의 ‘영혼’을 위해서는 열렬한 기도를 쏟아 놓다가도, 진짜 아내나 아들에게는 기도하던 그 자리에서 곧바로 욕설과 폭력을 서슴지 않는, 무척 길이 잘 든 인간들이 있었다.

문명생활에서는, 글자만 놓고 보면 아무렇지 않은 말인데도(단어 자체는 공격적이지 않으므로)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말투로 사용하면 마치 얼굴을 정면으로 때리는 듯 위력이 생기는 말들을 통해 가족간의 증오가 표현된다. 그러니까 이 게임을 잘 이끌어가려면, 너와 글루보즈가 각각 이 두 바보에게 일종의 이중잣대를 주는 일에 주력해야 하는 게야.
어머니한테는 제가 한 말들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 주고 실제로 한 말만 가지고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어머니가 한 말의 어조며 전후맥락이며 숨은 의도까지 꼬치꼬치 따져서 최대한 과민하게 해석하고 반응하게 하거라. 물론 어머니 편에서도 똑같은 짓을 하게 해야지. 그러면 말다툼이 벌어질 때마다 각자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굳게 확신하거나,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확신에 가까운 믿음으로 등을 돌리게 될 게다.
‘저녁 언제 먹느냐고 물었을 뿐인데 엄만 괜히 난리야’ 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상황이 어떤 것들인지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일단 이런 버릇을 잘 들여 놓기만 하면, 자기가 먼저 불쾌한 말을 해 놓고서도 상대가 언짢은 내색을 한다고 도리어 서운해하는 유쾌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최선의 방책은 진지하게 기도할 마음이 아예 생기지 않도록 막을 수 있는 데까지 막아 보는 거다. 네 환자처럼 최근에 원수 편으로 복귀한 성인일 경우, 어렸을 때 앵무새처럼 따라 기도하던 버릇을 기억해 내도록 부추기거나 스스로 기억한다고 믿게끔 유도하는 게 아주 효과적이다. 그러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제야말로 완전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 내면적이고 비공식적이며 규칙에 매이지 않은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거든. 초심자가 이런 생각을 할 경우, 사실은 의지와 지성을 집중시키지 않은 채 막연하게 경건한기분만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꼴이 되는데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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