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정책에서 얻는 이익을 모두 더하고 모든 비용을 빼면, 다른 정책을 펼 때보다 더 많은 행복을 얻게 되는가?"
공리주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 같은 사례를 증거로 내세워, 비용·편익 분석을 적용하여 사람 목숨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편 비용·편익 분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들은 우리가 재화나 편의를 얻기 위해 사회적 선택을 할 때, 흔히 암묵적으로 사람 목숨을 거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인정하든 안 하든, 사람 목숨에도 가격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동성 결혼에 찬성하는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비차별과 선택의 자유에 기댈 수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누가 결혼할 자격이 있는지 결정하려면, 결혼의 목적과 결혼이 칭송하는 미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논란이 되는 도덕적 영역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우리는 좋은 삶에 대해 대립하는 개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기가 불가능하다.
복지의 극대화, 자유의 존중, 미덕의 배양이라는 가치는 서로 불일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가치들이 충돌할 때는 서로 다른 이상들이 뒤엉키기도 했다. 정치 철학이 이러한 불일치를 단숨에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민주 시민으로서 스스로의 주장을 형성하고, 직면한 대안들의 도덕성을 살피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정의에 관한 세 가지 견해의 장단점을 살펴본다.
다른 사람을 돕는 행동은 남에게 강요해서도 안 되고 남으로부터 강요받아서도 안 된다. 부자에게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면, 부자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자기 소유물을 마음대로 쓸 권리를 침해한다. 노직에 따르면, 경제 불평등은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포브스 400대 부자에게는 수십, 수백억 달러의 재산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한 푼도 없다는 사실만으로 그러한 현실이 정의롭다거나 정의롭지 못하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노직은 정의로운 분배에 특정한 유형(동일한 소득, 동일한 공리, 생필품의 동일한 공급 등)이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분배가 이루어져 왔는가이다.
자유 시장에 우호적인 시각은 보통 두 가지 주장에 근거한다. 하나는 자유를 중시하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복지를 중시하는 주장이다. 첫 번째 주장은 친시장 자유지상주의자의 견해다. 이들은 자발적 교환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며, 자유 시장을 법으로 간섭하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말한다. 두 번째 주장은 친시장 공리주의자들의 견해다. 이들은 자유 시장이 사회 전체의 복지를 증진시키며, 거래가 이루어지면 거래하는 양측이 다 이익을 얻는다고 말한다. 거래가 어느 누구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한, 전체 공리는 당연히 높아질 것이다. 반면 시장 회의론자들은 그러한 주장에 의문을 품는다. 이들은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이 겉보기처럼 항상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돈으로 거래할 경우 타락하거나 질이 떨어지는 재화와 사회적 행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제시한 미덕과 좋은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책은 주로 도덕 철학에 관한 것이지만, 미덕의 습득이 시민이 되는 것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잘 보여 준다. 도덕적 삶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고통의 총합을 넘어서 쾌락이 극대화된 상태라는 공리주의적 행복이 아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올바른 것에서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투견을 보면서 쾌락을 느끼지만, 우리는 이를 극복해야 할 악으로 여기지 진정한 행복의 원천으로 여기지 않는다. 도덕적 탁월성은 쾌락과 고통의 총합을 따져 보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별하여 고상한 것에서 기쁨을, 비도덕적인 것에서 고통을 느끼는 데서 나온다. 행복은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며, "미덕에 부합하는 영혼의 활동"이다.13 하지만 미덕이 가득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왜 폴리스에 살아야 하는 걸까? 집에서, 철학 수업에서, 혹은 윤리에 관한 책을 읽고 그 내용을 필요한 곳에 적용하면서 건전한 도덕 철학을 배울 수는 없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런 식으로는 미덕을 갖출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덕적 미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긴다." 즉 미덕은 행동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예술이 그러하듯이, 미덕은 무엇보다 실천을 통해 얻을 수 있다.
도덕적 미덕이 행동으로 배우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처음부터 올바른 습관을 길러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법의 1차 목표로 보았다. 즉 좋은 인격 형성으로 이어지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입법자들은 시민에게 좋은 습관을 심어 주어 시민을 선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는 모든 입법자의 희망으로, 그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셈이다. 좋은 헌법과 나쁜 헌법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도덕 교육은 규칙을 퍼트리는 것이라기보다는 습관을 기르고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다. "어렸을 때 어떤 습관을 기르느냐에 따라(……) 적지 않은 차이가 생긴다. 사실 그 차이는 매우 커서, 어쩌면 이때 ‘모든’ 차이가 형성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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