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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단무지로 일식의 섬세함을 살리기 힘들고, 무말랭이로 한식의 깊은 맛을 모두 표현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그러니 먼저, 이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산뜻하게 풀어낸 작가한테 박수를 보낸다.
가족이 있다. 일흔 노모와 쉰 살 아들 둘과 딸 하나. 옹기종기 모여 까르르 웃고 떠들고 즐거웠다면, 행복에 겨워 가끔 투닥거리는 달빛가족(KBS2 TV에서 1989년에 방영한 주말 드라마. 길용우가 ‘둔 보따리’라는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이겠다만, 닭백숙 냄비를 들고 싸우는 쉰 살 넘은 형제들의 이야기는 아무리 좋게 봐도 수상한 삼형제(KBS2 TV에서 방영 중인 주말 드라마. 막장 스토리로 유명하다.)스토리다.
더욱이 그들의 관계가 어쩐지 닮은 듯 닮지 않았으니, 이거 혹시 막장의 대명사로 불리는 배다른 형제 이야기가 아니던가? 기억상실과 백혈병까지 양념으로 듬뿍 넣었다면 MSG 능가하는 자극적인 이야기가 됐겠지만, 작가는 절제의 미덕을 아는지라 그런 천박한 갈등과 사고는 사정없이 빼버렸다. 그리고 걸죽한 현실을 손 크게 듬뿍 담아 끊여냈다.
한평생 건달로 놀고 먹으며 강간, 폭행으로 얼룩진 인생을 살아온 첫째, 공부는 쫌 했지만 결국 무능한 영화감독으로 실패한 인생이라는 소리를 듣는 둘째, 룸싸롱, 이혼과 재혼, 거기에 바람이라는 키워드로 대표되는 여동생이 일흔 노모 밑에 기어들어오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다들 저마다의 사정이 있는 게 당연한 말이지만 사정을 들어도 영 동정이 안 간다. 그런 주제에 가족애니 형제애 같은 것들도 남들보다 현저히 적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한 지붕 아래 모여 있을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해답은 어머니다. 몇 년 간 살 맞대고 살던 서방이고 나발이고, 일단 날개옷만 낚아채면 모두 빠이빠이. 부귀영화를 좇는 거짓 같은 선녀년이 아닌 진짜 살아 숨쉬는 우리 어머니로 가족은 해체와 재구성을 맞는다. 또, 그렇다고 그 모성이 내 간 떼어주고 내 피 나눠주는 헌신은 또 아니다. 그저 제비새끼 같은 자식들 입에 뭐라도 하나 넣어주려는 마음, 다섯 손가락 어떤 걸 깨물어도 다 똑같이 아픈 부모 마음에 더 뭉클할 뿐이다.
소설 속에 일발역전은 없다. 진짜 인생이 그렇듯 응원과 기도 따위 만으론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 당연하다. 이 등나무 줄기보다 복잡한 가족의 어둡고 칙칙하지만 웃기는 이야기는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웃음이 터져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