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가 마침내 손을 놓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교실을 나간 뒤, 덴고는 그곳에 우두커니 선 채 한참이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몹시 강한 힘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의 왼손에는 소녀의 손가락 감촉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고, 그 감촉은 며칠이나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직접적인 감촉이 희미해진 뒤에도 그의 마음에 찍힌 낙인은 그때의 형태 그대로 남았다. 그 얼마 뒤에 첫 사정을 했다. 단단해진 페니스 끝에서 액체가아주 조금 나왔다. 오줌보다 얼마간 끈끈한 것이었다. 그리고 희미한 동통이 느껴졌다. 그것이 정액의 전조라는 것을 덴고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는 불안을 느꼈다. 그런 것을 그때껏 본 적이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자신의 몸에 일어나고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 학교 친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한밤중에 꿈을 꾸고 눈을뜨면 (어떤 꿈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속옷이 축축이 젖어있었다. 그 소녀에게 손을 잡힌 것 때문에 자기 안의 뭔가가 풀려나오고 만 것이라고 뎬고는 생각했다. 그뒤 이이 - P100
물론 덴고의 기억이 남는다. 그의 손의 감촉이 남는다. 마음의거센 떨림이 남는다.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갈망이 남는다. 가령 다른 사람이 된다 해도, 덴고에 대한 그리움이 내게서 뜯겨나가는 일은 없다. 그것이 나와 아유미의 가장 큰 차이다,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은 무가 아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변함없이 덴고라는 열 살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의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멸하지 않고, 서로나누지 않은 약속은 깨지는 일이 없다. 아오마메 안의 서른 살 덴고는 현실의 덴고가 아니다. 그는 이른바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아마도 그녀의 상념이 만들어낸 것이다. 덴고는 아직 그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제는 성인 남자의 굵은 팔뚝과 - P133
"안녕." 그녀는 작게 입 밖에 내어 말했다. 자신의 집에게가아니라, 그곳에 있었던 자기 자신을 향한 작별인사였다. - P136
"아, 그렇군요. 당신은 아직 젊고 건강하니까 그런 건 잘 모르겠지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일정 나이를 넘으면 인생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의 연속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빗살 빠지듯이 하나하나 당신 손에서 새어나갑니다. 그리고 그 대신 손에 들어오는 건 하잘것없는 모조품뿐이지요. 육체적인 능력, 희망이며 꿈이며 이상, 확신이며 의미,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것이 하나 또 하나, 한사람 또 한사람, 당신에게서 떠나갑니다. 이별을 고하고 떠나기도 하고, 때로는 어느 날 예고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번 그렇게잃어버리면 당신은 다시는 그것들을 되찾을 수 없어요. 대신해줄 것을 찾아내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이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지요. 때로는 몸이 끊어질 듯이 안타까운 일이에요. 가와나 씨당신은 이제 곧 서른이 됩니다. 이제부터 조금씩 인생이 그런 저•물녘으로 들어서려고 해요. 그것이, 예, 말하자면 나이를 먹는다•는 겁니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이 고통스러운 감각을 당신도술 - P160
덴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데 지쳤어요.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데도 지쳤습니다. 내게는 친구가 없어요. 단 한 사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해요. 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은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런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거예요. 내가 하는 말, 알아들어요?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는 없어요. 아니, 그게 아버지 탓이라는 게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역시 그런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죠. 아버지도 아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을 거예요. 안 그래요?" 아버지는 침묵 속에 틀어박혀 있었다. 입술을 굳게 다문 채였다. 덴고가 말한 것을 그가 얼마나 이해했는지, 표정으로는 알수 없었다. 덴고도 말없이 의자에 몸을 묻고 있었다. 열린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은 오랜 햇볕에 변색한 커튼을 펄럭이고 화분의 가느다란 꽃잎을 흔들었다. 그리고 활짝 열린 문을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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