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박혜란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한 사람의 진솔한 인생 철학서이다.

저자는 드라마 작가를 꿈꿨고 결혼 전 아동 복지 센터를 운영했으며 현재는 후회 없는 육아를 결심하고 전업주부로서 두 아이를 기르고 있는 '엄마'이다.


책은 10장으로 이뤄졌는데 1장은 아주 짤막하게 象에 대해서 질문을 던진다.

나는 어떤 象인가…….

내가 어떤 象인지에 대한 질문은 점점 삶에 대한 질문으로 발전한다.


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나 역시 남동생이 있기 때문인지 감정이 몰입되었다.

아이의 생일과 같아져버린 남동생의 기일…….

남동생의 첫 기일이 다가올 때 저자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읽으며 나도 함께 먹먹함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단 감정이 들었다.


"나는 그저 열심히 살았다.

주어진 내 하루에 먼저 떠난 동생을 핑계 삼으며 살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동생에 대한 예의였고, 정신없는 와중에 스스로 택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p.46)"


동생에 대한 예의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

저자에게 점점 마음을 열고 다가가게 된 시작점이었다.


"나의 일과는 정해진 것에서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p.47)

"사람이 주는 위로에는 한계가 있다. 누구에게든, 기약 없이 슬플 내 마음을 언제까지 염려하고 안아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p.48)


강하고 단단한 사람. 저자에게 받은 인상이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저자는 더 단단해지고 자신만의 철학이 더 견고해지기 시작했다.

"나만의 철학이 생기니 내 발밑의 뿌리가 땅속 깊은 곳까지 퍼져나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느꼈다.(p.55)"


나만의 뿌리가 깊은 곳까지 박혀 단단히 서있을 수 있는,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내가 되는 것. 이것은 요즘 내가 가장 바라는 나의 모습이자 현재 가장 큰 나의 과제이다. 저자는 내게 어떤 길을 보여줄 것 같았다.


이 책이 내게 많은 울림을 준 것은 저자의 생각들이 나랑 잘 맞았던 것도 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은 그 어떤 육아서보다 내게 가르침이 컸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이의 시간표대로 살며 느리게 온 정성을 다해서 아이를 키웠다.

저자가 아이들에게 바란 것은 딱 세 가지였는데

첫째, 부디 부모인 나보다 더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

둘째,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살아가길 바란다.

셋째,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늘 물어보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둘째, 셋째는 나와 생각이 비슷해서 그래하면서 끄덕였지만, 죽음으로 부모보다 오래 살아주길 바란다는 여태 생각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지…….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 우리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그저 건강만해라 같은 맥락이면서도 더욱 직관적인 이 바람은 나 역시 생각해보게 되는 바람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바라는 세 가지를 이야기 하며 동시에 부모이기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범위 세 가지도 정했다.

이런 구체성을 띄는 것.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니었나? 그래서 나도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아이에게 바라기보다는 내가 이것만큼은 지켜야겠다로…….


"내 유년기는 선택할 수 없었지만, 엄마로서의 내 모습은 선택할 수 있었다.(p.95)

나는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


"슬쩍 잠이 들어 손에 힘이 풀리면 눈을 떠서 엄마 손가락을 찾아내어 다시 꽉 쥐고, 또 잠이 들면 화들짝 깨서 옆자리에 엄마가 누워 있는지 확인을 했다. 나는 항상 엄마가 그리운 아이였고, 엄마가 너무나 필요한 아이였다."

친정엄마는 내게 늘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 녀석이 나를 늘 그리워한다고. 그럴 때마다 뭔 소리냐고 뭐라 했는데 저자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이 이야기가 나의 가슴을 때렸다.

아들 녀석도 잠을 자다 꼭 나를 찾고 내 머리카락을 잡아야 마음을 놓는 버릇이 있는데 나는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그 작고 작은 아이에게 엄마는 온 우주였을 텐데…….내가 너무 무심했구나…….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또 이 책에서 먹먹한 마음으로 읽은 대목이 7장 아버지-그의 인생 이었다.

저자의 아버지는 19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그 아버지가 남긴 엄청난 빚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2남 4녀 중 장남이었고, 삼촌은 오토바이 사고로 몸이 성치 않았기에 그 빚과 동생의 병마저 떠안고 살아가야 했었다. 도매 시장 짐꾼으로 들어가 하루 2시간씩 자며 빚을 갚아 낸 인생. 그 고단한 인생을 나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아버지의 엄하고 예민하며 걷잡을 수 없는 불같이 매서운 모습을 인정하고 존경했다.


"매일 쫓기며 자는 쪽잠에 크는 자식 재롱도 보지 못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빚을 갚아야 했을 막막한 인생. 그 인생 앞에 온유할 사람이 이 세상 어디 있을까.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타인에게도 바라서는 안 된다.

나는 두 번을 태어나도 해내지 못할 일생을 내 아버지는 버터 내셨다.

나라면 도저히 견딜 자신이 없는 인생을 살아 내신 것, 그것만으로도 내가 아버지를 존경할 이유는 충분했다.(p.141)"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고집이 세지고 억세 진다. 체력은 점점 떨어지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만큼 고집은 단단해진다. 지금 내가 생각하고 옳다고 믿는 세계가 더욱 견고해진다.

그런 노인들을 젊은이들은 이해하지 못 한다. 그러나 정도만 다를 뿐 우리도 노인이 되면 별반 다르지 않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완고한 노인을 마주할 때 유쾌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완고한 노인이 내 부모님이 되셨을 땐 더더욱 그러하다.


언제부턴가 거세진 아버지의 말씀, 완고하고 타인의 말을 자꾸 자르시는 모습에 내 나름의 상처를 받았다. 왜...우리 아버지가...어쩌다가…….

그러나 저자가 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함으로써 오히려 존경을 하는 모습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우리 아버지의 삶을 얼마나 이해했는가? 아니 나는 우리 아버지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글을 읽고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드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죄송했다. 문득 외로웠을 것 같은 아버지 생각에…….

그리고 이 마음은 세상 모든 노인들(태극기 부대 노인들까지도)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 것 같았다.


진솔하고 담담한 저자의 이야기는 책을 덮은 후에도 여운이 오래갔다. 그 여운을 갖고 부모님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게도 많은 질문을 던져준 "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

부디 저자가 행복하길 바란다.(지금도 물론 행복하겠지만!!)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좋은 글 많이 써주길 바란다.

읽는 동안 좋은 친구를 만나 수다 떤 것처럼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것이 진솔한 이야기의 매력일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여담..."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책 제목을 처음에는 "무슨 정신으로 사는건지"로 읽었다. 읽는 내내 그렇게 읽었다. 그런데 다 읽고 서평을 쓰고 나니 "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뜻이 또렷하게 읽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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