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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정원을 거닐다
민완기 지음 / 북위49 / 2026년 4월
평점 :
아름다운 산문집 <사유의 정원을 거닐다> 를 잘 읽었다.
정성껏 가꾸어온 정원에 초대되어 같이 공감하며 웃다가 설레는 꽃과 나비와 티타임까지 아롱진 향기로운 산책과 같은 시간이었다.
글 내면에 흐르는 "힘"을 느껴지는 건, 아마 같은 1세대 이민자이기에 더욱 큰 공감을 하며 읽게 되는 것이다. 영어권 나라에서 살아가는 이민자로서의 숱한 웃픈이야기들이 그렇다. 특히 이민 첫해부터 섬기셨던 프레이저밸리 한국어 학교이야기는 큰 감동이다. 최근 들어 전세계적으로 한국어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모국어를 지킨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기억과 뿌리를 지켜내는 일이었다는 고백이 책속에 흐르는 '힘'으로 느껴졌다.
책속에 자문한 <과연 내가 쓰는 글에 힘이 있기는 할까?> 그 힘, 넘쳐 흘러 읽는 독자의 마음을 두근두근하도록 두드린다.
<나의 빙점이야기>에서 "이민자의 삶은 두겹의 계절을 산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고향의 겨울이 잘 녹아들지 않는다" 는 구절도 역시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또한 나의 빙점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흔연히 잘 생활하다가도 일상 중에 어떤 한 단어를 만나면 그대로 숨이 막혀오면서 얼어붙는 지점을 아야코는 빙점으로 표현하였고, 인간의 내재적 본질인 원죄 의식과 주홍 글씨와 같은 죄의식을 수면 위로 끌어내었다. <나의 빙점 이야기>
나의 빙점은 ‘장손‘(長孫)이다. 한 가문의 장손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가문의 이름을 지켜야 한다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자랐다. 책임, 의무, 체면, 효, 기제사, 성묘, 벌초, 음복, 홍동백서, 좌포우육…. 이러한 단어들은 내 젊음과 이민을 오기 전까지의 삶, 네 귀퉁이에 박힌 못과 같았다. 그러나 이민의 선택은 그 못을 스스로 뽑아내는 일이자, 동시에 또 다른 죄의식의 시작이었다.<나의 빙점 이야기>
이민자의 삶은 두 겹의 계절을 산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겉으로는 새로운 봄을 맞이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고향의 겨울이 잘 녹아들지 않는다. 눈발처럼 흩날리는 죄책감, 장손의 이름 앞에 쌓인 책임 방기의 한(恨)이 내 안의 온도를 낮춘다.<나의 빙점 이야기>
너는 세상을 구하라는 사명을 지고 태어난 아이는 아니란다. 다만 네 앞에 놓인 하루하루를 성실히 건너며, 누군가의 오늘을 조금 덜 무겁게 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단다. 인사를 잘하던 네 아빠처럼, 사람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고 마음으로 말을 건네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 한마디 인사가 어떤 날에는 과일 한 조각이 되고, 어떤 날에는 메마른 마음을 적시는 시원한 생수가 된다는 사실을, 삶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되기를 바라는구나. <노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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