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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듣는다
루시드 폴 지음 / 돌베개 / 2023년 12월
평점 :
<모두가 듣는다>는 6년만에 펴낸 저자의 신작 에세이로, 기존의 서한집이나 사진집 등과 달리 단독 산문집으로 발간한 첫 책이라고 합니다.
음악에 대한 소신과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 더불어 사는 것의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자 하는 분께 추천합니다.
루시드 폴님에 대해선 사실 잘 알지 못하고.. 방송에서 언급되는 이름만 얼핏 들었던 수준이었어요. 음악은 아마도 들어보긴 했을텐데 제목은 모르거나 하는. 그런데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공학박사 출신 농부 뮤지션이라고 소개하는 예고를 봤지뭐예요.
귤 농사 짓는 음악인이라고? 그때부터 귤+루시드 폴, 이렇게 제 머릿속에 저장되었다죠. 홈쇼핑에도 나오셨다면서요? ^^
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소한 인연이었을까요? 돌베개 출판사의 서평 이벤트를 알게 되었고, 신청했는데 뽑혔어요! 덕분에 귤 농사 짓는 뮤지션 루시드 폴님을 좀더 알게 되고 궁금한 점도 해소되어 좋았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스웨덴과 스위스의 유명 대학교에서 박사 과정까지 공부한 저자는 어떤 연유에서 기존의 일을 그만두고 음악과 귤 농사를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누구나 자신만의 고민, 사연이 있겠죠. 저자의 대답은 좀 밍밍한 듯 느껴졌지만 곧이어 고개도 끄덕여졌어요. 사람의 일이란 게 다 그런 것 같아서요.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 느끼고, 그렇게 했을 뿐. 어디를 가고 누구를 만나는지에 따른 변수도 있을 테고요.
그 순간에 뒤돌아보지 않고 덤덤히 앞으로 걸어간 저자가 참 대단해보였습니다.
<모두가 듣는다>는 소리와 음악, 음악과 철학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에요. 우리를 둘러싼 생명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소리를 내고, 그 소리는 좋은 음악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음악에 관한 한 소외된 이 없이 모두가 다 연주자이자 주인공이라고요.
어두운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을 반짝이는 눈의 관객을 같이 음악을 완성하는 연주자로 만들어 주더니, 나무들의 즐거움과 고통에 귀 기울여주는 마음 따신 분이었어요.
음악에 관해서는 듣기만 할 줄 알았지 1도 모르는 상태이다 보니 전문 용어나 기기 이름이 나오면 무덤덤하게 읽고 다음으로 넘어갔습니다만..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범위 안팎의 너무나 다양한 소리의 존재, 그 소리에 주목하고 유의미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인고의 작업에는 한동안 시선이 머물 수밖에 없었어요.
저자에 따르면 나무도 상처를 입으면 비명을 지르고 상처를 치유하고자 애쓴대요. 실제로 학술지 『Cell』에 발표된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식물의 비명은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음역대에 있어서 직접 들을 순 없지요.
하지만 그 비명 소리를 듣는다면 단순히 모양이 마음에 안들어서 혹은 전망을 가린다고 나무를 댕강 잘라버리는 일은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권정민 작가님의 그림책도 생각나고, 순간 총채벌레 때문에 손을 놔버린 저희 집 화분을 둘러보는데.. 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단순히 소리를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소리와 함께 그 의미도 헤아려야 하니까요.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누군가의 소리를요. 듣지 않는 말은 쌓이고, 말이 쌓이면, 썩는대요.
애정하는 앨범 속의 소리, 한껏 자유로운 소리, 한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소리, 추모의 소리가 음악이 되고 세계가 되는 순간으로 저자는 독자를 데려가줍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뒤에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가'라니.. 그럼 저도..?! ^^
1991년 시작된 새만금 사업은 완공까지 무려 19년이 걸렸다더라고요. 살아있는 갯벌을 가로질러 30킬로미터가 넘도록 콘크리트 담을 두른 이후 사람들이 놀라며 감탄하는 사이, 더 이상 바닷물이 들지 않는 갯벌의 생물들은 바다가 올때까지 무기한이 될 수도 있었던 시간을 펄 속에서 버티고 있었다고 하네요.
갯벌을 사랑하는 이들이 각고의 노력을 거듭한 결과, 하루 두 번 바닷물이 갯벌로 흘러들도록 하자 갯벌이 겨우 숨을 쉬는가 했는데.. 갯벌에 공항을 짓는다고요?? 2023년 6월 개봉되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 속 이야기입니다.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우리 인간이 꼭 봐야하는 영화라던데요. 저자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만 싶었다고 했어요.
사람들만의 세상이 아니고 사람 또한 그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음악을 얘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우리들이 간과하고 지내는 것들,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많은 것들에 대해 저자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음악은 음악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해줄 테지만요. 결국 모두가 귀를 기울이면 모두가 듣는 세상이 오겠지요? 모두가 듣는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알게 모르게 서로를 울리고, 함께 떨리며 살아간다. 나는 공연장 객석에 앉은 이들을 청중이나 관객이라 부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무대에 선 나를 울리며, 나 역시 그들의 몸짓을 듣기 때문이다. 그것은 음악이자 춤이다. - P19
나무의 소리든 사람의 소리든 나를 잠시 멈춰 놓아야 들을 수 있다. 듣지 못하면 느낄 수 없다. 우리는 듣는 만큼 보고, 듣는 만큼 느낀다. - P29
세상에는 타자를 유심히 듣는 이들도 있고, 듣지 않는 이들도 있다. 듣지 않는 이들은 결코 자신을 기울이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자신을 향해 기울이기만을 원하거나, 혹은 강요한다. - P58
무의미한 소리가 의미를 띠는 순간 음악이 되고, 음악가는 세계를 얻는다. 그리고 음악이든 문학이든 물질이든 요리 한 접시든, 세계를 만들어내는 이는 모두가 예술가다. - P166
이 거대한 힘을 느낄 때마다 나는 좌절하면서도 겸허해진다.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싶어진다. 자연은 느리지만 강하고, 여린 듯해도 너무나 굳세다. 인간은 저마다의 이익과 논리로 자연을 괴롭힐지 몰라도, 자연은 그런 이유로 인간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자연을 포기하지 않는 한, 자연도 인간을 포기하기 않는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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