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 사람을 죽이면 사형에 처한다.-이 판단의 최대 장점은 그 범인은 이제 누구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



오랜만에 읽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입니다. 이번에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권의 책이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가장 관심이 가던 책이었습니다. 출간 전 e book으로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남들보다 빠르게 읽을 수 있었네요.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싶은 느낌이 물씬 난달까.. 속도감이 장난 아니더군요. 금세 페이지가 술술 넘어갑니다.


나카하라와 사요코는 20년 전 딸 마나미를 두고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강도가 들어와 딸을 살해하고 얼마 후 잡힌 범인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받게 한 후 얼마지않아 서로 보기가 힘들어 헤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난 후 나카하라에게 마나미사건 당시 담당형사였던 사야마에게 연락이 오고 사요코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사요코를 죽인 범인은 다음날 바로 자수를 했다. 알지도 못하는 백발의 노인은 금품을 노린 우발적 범행이라고 했지만 자신과 헤어져 산 시간 동안 사요코가 작가로서 쓴 글과 노인의 사위가 보낸 용서해달라는 편지를 보고 뭔가 석연찮음을 느끼고 사요코의 피살 전 행적을 밟아가는데..

 

 


딸과 전 부인이 모두 살해당하는 정말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된 나카하라를 중심으로 흐르는 이야기. 형사도 아니고 탐정도 아니기에 그저 일반인이 지인을 통해 추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밝혀지는 진실이 참... 할 말이 없게 만듭니다.

 


만약 최초의 사건에서 히루카와를 사형에 처했다면 내 딸은 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히루카와지만, 그를 살려서 다시 사회로 돌려보낸것은 국가이다. 즉, 내 딸은 국가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 - 285p
사람을 죽인 사람은 계획적이든 아니든, 충동적이든 아니든, 또 사람을 죽일 우려가 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그런 사람을 사형에 처하지 않고 유기형을 내리는 일이 적지 않다. 대체 누가 '이 살인범은 교도소에 몇 년만 있으면 참사람이 된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살인자를 공허한 십자가에 묶어두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징역의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은 재범률이 높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갱생했느냐 안 했느냐를 완벽하게 판단할 방법이 없다면, 갱생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형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285~286p


사형. 이 주제의 이야기는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번 역시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사실 저는 잘못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무조건 찬성합니다. 범죄에 있어 가장 큰 벌은 사형이기에 사형제도가 사라지는 것에.. 아니 있으나 마나 집행되지 않음에 유가족들의 상심이 얼마나 클지 어느 정도 공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 집행자들이 겪을 트라우마(예전에 책과 영화에서 봤었죠.. 그들이 겪는 괴로움...) 같은 것이 걱정되는 것도 맞습니다. 그렇기에 사형에는 반대냐 찬성이냐에 똑 부러지게 대답하기가 힘들죠. 책 속에서는 저와는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형을 판정 받아도 피의자가 반성하지 않는 사형은 옳지 않다. 같은 사정을 가진 사건이 아니라면 벌도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그 벌은?' 참 어렵지요. 작가는 이것들을 어떻게 풀어낼지 읽으면서 내내 궁금해했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결론을 내리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가, 아마 이 의문에 대한 모범답안은 없겠지요"
- 588p

 

 

몇 년 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느낌이 달랐습니다. 그의 책을 다수 소장하고 있으나 읽은 것은 손에 꼽히지만 그때마다 느꼈던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결말은 아니었기 때문일까요.. 지루함 없이 빠르게 읽히기는 하지만 권선징악의 모습이 아닌 그 틀을 벗어난 듯한 결말이 씁쓸함을 유발했습니다. 아마도 소재가 '살인 후 범인을 잡고 범인은 벌을 받았습니다. 끝~'이 아닌 그 후 그들에게 주어져야 할 합당한 벌은 무엇인가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겠지요.

"지금의 법은 범죄자에게 너무 안이하니까요. 사람을 죽인 사람의 반성은 어차피 공허한 십자가에 불과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아무 의미가 없는 십자가라도, 적어도 감옥 안에서 등에 지고 있어야 돼요. 당신 남편을 그냥 봐주면 모든 살인을 봐줘야 할 여지가 생기게 돼요. 그런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돼요." - 575p

반성하지 않은 범죄자들의 사형은 과연 옳은 것인가?
사형제도는 계속되어야 하나? 폐지되어야 하나?
공허한 십자가는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
단숨에 읽은 것에 비해 여운이 길게 남을 것만 같습니다.
* 본문 내용은 ebook으로 봤기때문에 페이지수가 종이책과 혹은 ebook폰트크기에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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