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만나는 책은 중요하다. 물론 책은 어느 때나 중요하지만.
내 생각에, 어렸을 때 만나는 책은 더욱 중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학교와 가정 (더해서는 학원)이라는 제한적이고 폐쇄적인 집단이 세상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떠한 문제나 폭력을 맞닥뜨렸을 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주변 어른들의 생각과 판단에 좌지우지되거나 그들의 결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학습하기 쉽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좋은 책이 필요하다. 건강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신만의 세계와 감수성을 구축하고, 올바른 태도를 기르고, 세상과 타인에 대한 이해력을 넓히는 데에 좋은 책은 좋은 어른 한 명의 몫을 한다.
나는 아직도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읽은 김중미 작가님의「괭이부리말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기억한다. 괭이부리말이라는 달동네, 뼈저린 가난, 제대로 된 가정의 보살핌 없이 방치되어 있던 숙희와 숙자, 동준이와 동수, 명준이와 같은 아이들.
그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고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준 영호 삼촌과 명희 선생님이라는 어른들. 내가 열한 살 때 읽은 그 책은, 아무리 고달프고 힘겨운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내 곁에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내게 있다면...
어떠한 좌절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질 수 있단 믿음을 심어 주었다.
나는「꼬리와 파도」를 읽는 동안,「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떠올렸다. 어떤 친구에게는 이 책이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언제나 함께 서로의 공을 주고 받고 같은 필드를 누리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으나,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꿈을 잃은 두 친구 무경과 지선.
친구들 사이 강자와 약자를 나누는 서열 놀이,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폭력의 부조리함을 견디지 못하는 예찬과 종률.
누군가를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인해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된 서연, 폭력의 피해자가 된 친구를 도우려다 실패한 경험으로 좌절을 겪은 현정.
소설은 이 여섯 아이들의 관계가 점차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전개된다. 각자 상처받고 움츠러있을 때,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진 아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다독인다. 그렇게 다시 일어나고 서로 힘을 합쳐, 진정한 사과 없이 상황을 모면한 가해자들이 다시 한 번 죗값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한 프로젝트를 꾸린다.
「꼬리와 파도」를 읽으며 가장 좋았던 부분은 '선순환'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엄지와 검지를 집게 모양으로 만들었단 이유로 반 남학생들에게 사이버불링을 당하고,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보호해줘야 하는 선생님에게 이해 받지 못하며 폭력에 노출된 선이와 미주. 두 아이를 감싸안는 유일한 어른 "무경",
어린 무경과 친구들이 당한 폭력을 외면하지 않고 어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며 나아가 그들을 도왔던 선생님 "최아라".
최아라가 무경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주었듯, 시간이 흘러 선생님이 된 무경 또한 선이와 미주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준다. 나는 이러한 선순환이 아이들에게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해도 된다는 어떤 믿음을 심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당연해 보여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이 책만 보아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피해자가 자신이 당한 폭력을 고발하는 순간, 피해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피해자성을 입증해야 하고 2차 가해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욱 상처 받으며 회의를 느끼고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최아라는 그날 현정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현정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현정은 울면서 생각했다.
왜 우리가 서로에게 미안해야 하는 거지? 대체 왜.
19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아프다고 말해야 하나?
왜 나는 내 친구가 다쳤다고 외쳐야 할까?
그러한 행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아이들의 눈을 외면하고, 때로는 억압하는 식으로 대응하는 어른들이 심어줄 수 없는 것이다. "최아라"와 "무경" 같은 어른들만이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선이와 미주가 무경을 만났듯 무경과 친구들이 최아라를 만나 곪아있던 상처에 약을 바를 수 있었던 것처럼.
선순환은 분명 반복된다. 아이들은 나쁜 걸 학습하기도 하지만, 좋은 걸 학습하기도 하니까.
아이들은 무경을 통해 싸움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쓸데없이 흥분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목표를 위해 차분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외로웠으나 의연했고 두려웠으나 눈감진 않았다.
많은 것을 바꾸진 못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건 아니었다.
p267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 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