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캠페인 - 미국을 완전히 바꿀 뻔한 82일간의 대통령 선거운동
서스턴 클라크 지음, 박상현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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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언제 암살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와 트라우마를 겪음에도 군중 속으로 들어갈때 안정감과 기쁨을 가진다는 것은 가능할까? 흥미롭게도 로버트 케네디는 그랬다. 형 존 F. 케네디가 암살 당하고 이후 마틴 루터 킹이 암살 당했음에도 대중을 직접 만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고 적대적인 이들이 섞여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로버트 케네디는 자신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이 예정된것 처럼 그리고 어쩔 수 없지만 받아들이겠다는 순교자적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죽음에 초연한것 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폭죽 소리, 자동차 배기음에도 놀라는 그를 보면 형의 죽음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상상하게 한다.

선거에 나가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나섰다는 점이 더욱 시선을 끈다. 선거에 나선 시점이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와 형의 죽음의 그림자와 위험은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무색하게 만든다. 젊은 로버트 케네디에게는 충분히 많은 시간이 있었다.

무엇보다 로버트 케네디가 인상적인 점은 통상적인 정치인들이 취할 전략과는 달랐다는 점이다. 연설하고 접촉하는 유권자에 대하여 그들이 설득되기 좋은 말만 하고 불리한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특히나 유권자가 불편해할 발언은 하지 않으려 드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능력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로버트 케네디의 행동을 보면 선거에 패배하고 싶어하는 사람 마냥 행동하였다.

대학생징병유예를 받은 진보적이고 베트남전에 반대하여 반전을 주장하는 대학생들에게 반전과 동시에 대학생 징병유예 폐지를 주장한다. 같이 반전운동에 동조하지만 동시에 군대는 가야 한다고 말하며 대학생만이 징병유예를 받는것은 하류층에 대한 차별이라는 사실을 격렬하게 지적하는 로버트 케네디를 보면 선거 유세를 하러 온것인지 강사로 온것인지 햇갈리게 한다. 흑인 수 자체가 적어 흑백갈등이 문제가 적은 오리건주에서 흑인 문제를 말하고 아무도 관심없고 유권자 마져도 소수인 인디언들에게 시간을 할애하며 그들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나온것인지 사회문제를 지적하러 나온것인지 햇갈릴 지경이다.

역시나 예상을 빗나가지 않고 오리건주에서 패배하고 좌절과 몰려드는 피로에 지쳐버린 로버트 케네디를 보면 그가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대통령 후보에 나섰음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바보 같아 보이는 순수함을 보여주는 로버트 케네디가 결국 승리를 거둬가는 모습을 보면 그가 던지는 메세지와 방향성 그리고 일관됨을 유권자들이 진실되게 느꼈다는 점이다.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보여지는 다른 경쟁자들의 행보와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후일 워터게이트가 일어나 물러나게 되는 닉슨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비교가 되고 만다.

캘리아포니아주에서 중요한 승리를 거둔 로버트 케네디를 보면 민주당 경선 경쟁자들은 이제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아 보이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로버트 케네디는 그간 자신에게 쌓여왔던 형에 대한 그림자를 떨쳐내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경선과정에서 로버트 케네디는 죽은 형의 도움을 받았지만 동시에 형과는 다른 모습으로 성공을 이끌어냈다. 더이상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가 아니라 앞으로 미국 대통령이 될 로버트 케네디라는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켐페인은 끝이난다. 마치 처음부터 깔린 복선을 회수하듯이 로버트 케네디는 암살당하였다. 이름과 성이 같은 시르한 시르한에게 암살당하는 결말을 보면 존 F. 케네디의 암살로 시작된 로버트 케네디의 트라우마와 각성이 결국 암살로 끝난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특히나 로버트 케네디가 죽기전 아내와 아이들, 동지들과 유권자들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형을 부른것을 보면 로버트 케네디의 내면을 보다 상상하게 만든다. 결국 로버트 케네디 역시 많은 이들의 기억속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82일간 벌어진 일이다.

아마 여기까지만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할 사람들은 긴글 볼 필요 없이 이 쯤에서 이 책을 골라도 좋다. 그러나 취향이 아니거나 좀 더 다른 생각을 보고 싶다면 쓸데없는 사족 같은 내용까지 보고 소장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도 좋을것이다.

나는 이 책을 보고 순수한 열정을 가진 양심가의 형의 죽음과 자신이 가진 책임에 대한 트라우마 극복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로버트 케네디를 다루기에 대부분 그의 긍정적 면모가 돋보이면서도 간혹 있는 단점과 실수들 그리고 긍정적 면모들로 인한 부정적 면모들에 대한 생각을 안할 수 가 없다.

로버트 케네디가 정말 민주당 경선을 이기고 결국 대통령까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는 미국을 변화 시킬 수 있을까? 답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의문스럽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이 순수한 열정가가 마지막까지 경선을 완주하고 대선까지 완주할지는 알 수 가 없다. 암살이라는 요소는 제외하고 그가 안죽었다면 민주당 경선의 남은 경쟁자 험프리를 정말 이길 수 있었을까?

로버트 케네디는 오리건주에서 자신에게 군중들이 모이지 않는 경우 겪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겪었다. 분명 그는 적대적인 이들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만큼 매력적이었지만 동시에 취약한 모습을 엿보였다. 만일 오리건주와 같은 패배와 좌절이 연속되었다면 제대로 힘을 낼 수 있을까 싶은 점이다.

또한 흑백갈등과 빈곤문제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와 방향성은 놀랍지만 동시에 적대적 세력 역시 늘려가며 결집시켜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열광적 선거 캠페인은 다른 편에게 위협감을 주었을 것이다. 물론 지지자가 늘어날 수록 반대자도 분명해지고 모인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로버트 케네디가 정말 모든 이들을 통합할 수 있는지는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이다.

분명 진일보하였지만 동일한 문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흑백갈등과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할지라도 하나의 통합이 하나의 분열을 불러오지는 않을까?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과연 잘 해낼지 역시 미지수이다. 그의 방향성과 메세지는 분명 지금의 미국과 다른 보다 나은 미국을 만들었으리라 생각하게 만든다. 어찌보면 그가 죽었기 때문에 68년의 문제가 아직까지도 지속된다는 생각이 들게까지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럼 로버트 케네디가 정말 해결할 수 있었을까?

나는 도덕적인 로버트 케네디를 보고 지미 카터가 떠올랐다. 둘이 동일하다고 할 수 는 없겠지만 지미 카터가 결말을 생각하면 성공적일지가 의문스러워 진다. 베트남전 반대는 당연한 것이지만 자신의 양심에 솔직하고 우둔해 보일정도로 이를 지키는 로버트 케네디가 남베트남의 멸망과 보트피플 그리고 여러 국제문제에는 대체 어떻게 대처할까?

물론 이런것은 상상의 영역이다. 그러나 이상적 인물이 이상적 결과를 가져올지는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게 한다. 한편으로는 로버트 케네디라는 인물이 가지는 매력에 빠져들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82일만에 끝나버린 그 매력이 가지는 씁쓸함은 이 책을 한번 더 읽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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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 비교종교학자의 열린 종교 특강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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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이 책을 기본적으로 그리스도교인을 위한책이 아니라 비그리스도교인을 대상으로 하는 종교 교양서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본격적인 서평에 앞서 이 책에 대해 쉽게 파악하려면 '독자들께' 와 '들어가면서' 책의 첫 부분을 먼저 읽어보는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종교간의 이해와 상호보완을 통한 발전을 논지로 펴고 있고 불교평론에서 연재한 '불교인을 위한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책의 내용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으며 1부는 그리스도교의 역사로 각 장마다 1장 발생, 2장 형성과 발전, 3장 중세와 교회분리 4장 개신교의 등장 5장 근대 6장 20세기를 다루는  6 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그리고 간간히 불교와의 비교 비슷한점등을 설명하고 있다. 

2부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과 논지가 있는 부분으로 '심층에서 만난 그리스도교' 라는 제목으로 7장 성경 8장 믿음 9장 도마복음 10장 새로운 가능성 이란 주제로 자신만의 견해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이해와 상호보완과 발전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교양서적으로서의 볼 만한 지식과 알거리가 있지만 동시에 오류와 저자의 주관에 따른 한계 역시 보인다.특히 기독교인이나 전문종교인이 본다면 그것은 더욱 명확할 것이다. 이는 저자의 주관이 들어가는 어쩔수 없는 점 도 있겠지만 저자의 사상이나 종교발전에 대한 논지는 진보적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으로만 보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전반적인 그리스도교의 역사와 종교간의 상호 이해와 보완 발전의 견해를 볼 수 있음에도 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를 더 힘들게 할 수 도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되려 한국의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평소 비판적인 그리스도교에 대한 관점을 가지거나 별로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국 그리스도교가 구시대적인 관점과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오해하기 매우 쉽다. 

또한 저자 오강남이 말하는 방법으로의 종교간의 이해와 상호보완이 가진 이상적 측면으로 인하여 그것이 옳은 길이라는 오해를 할 수 있다. 저자는 그것이 옳다의 관점이나 의도가 아님은 책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지만 그리스도교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면 그러한 불필요한 오해를 제공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저자 오강남의 문제나 잘못이 아니라 한국적인 관점에서의 충분히 일어나는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실수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도마복음과 그에 관련한 깨달음에 대한것으로 저자 오강남은 도마복음의 내용을 바탕으로 불교의 깨달음과 도마복음에서 꺠달음이라는 것을 통한 공통분모를 찾고자 하였다. 다만, 이는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기에는 특히 한국의 그리스도교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이는 영지주의가 본 책의 1부에서도 나오듯이 오래전에 이단으로 분리된 현실에서 도마복음을 공통분모로 보고 하나의 방안으로 가는 것은 무리하다고 볼 수 있다. 비그리스도교인이 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그 점을 쉽게 설명하자면 비구승과 대처승 그리고 중국화 되기 이전의 불교가 예시가 될 것이다 한국에서 승려가 고기를 먹거나 결혼을 한다면 파계승이라는 말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비구승과 대처승의 갈등이 생기기 전만해도 한국에서도 승려가 결혼이 가능하였고 이를 대처승이라 부른다. 지금의 경우 대처승은 거의 없다. 중국화된 불교 특히 중국 남북조시 말기 이전에는 승려가 고기를 먹는것 자체로 파계가 되지 않을 뿐더러 종파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 한국의 불교도 승려가 고기를 먹고 결혼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면 일반적인 불교인이라면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을것이다. 물론 이것은 워낙 대중적인 인식인지라 비불교인도 이해할 수 없을것이다. 저자 오강남이 바라보는 도마복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스도교에서 깨달음을 말하고 도마복음이 단지 영지주의에 복음서가 아니라는 주장은 앞서 말한대로의 오해를 부를 수 있다. 

특히 도마복음에 있어 77절을 3가지를 검토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오강남의 주관적인 견해이다. 
첫째는 우주적인 나 모든 사람속에 내재한 신성 천도교의 '향아설위' 개념과 궤를 같이하며 '시천주', '인내천' 불교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초개인적인 자아 즉 불성 
둘째는 빛이 상징하는 종교적 의미로 힌두교의 우파니샤드와 불교의 아미타 유대교의 조하르의 문자적 의미 그리스도교의 '신의 영광' 이란 빛이신 신의 특성을 이야기 함을 말하며 신비주의 전통에서의 순수의식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내면세계의 찬연함을 말해주는 보편적상징 
셋째는 범재론적 신관을 통한 나 또는 신성이 어디에나 발견 될수 있다고 한것을 통한 장자가 도는 '없는데가 없다.' 를 인용하며 도의 '주편함'적 특성과 '편재성' 불교적으로는 '이사무애'나 '사사무애'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세가지 검토가 저자 오강남의 논지이다. 비그리스도교인이 볼 때 언뜻보면 모든 종교가 비슷한 면이 있다고 넘어 갈 수있지만 동시에 이해하기 난해한 점 역시 존재한다. 또한 그리스도교인이 본 다면 불쾌할 수 도 있다. 

다만 그럼에도 저자의 의도와 책의 내용은 무의미하거나 곡해한 내용을 담았다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분명 저자는 그리스도교를 이해하는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그리고 종교간의 화합과 상호존중 발전을 생각하여 글을 썼으며 그 방안으로 도마복음의 해석을 통한 깨달음을 통한 종교간의 공통성 내지는 비슷한 점을 찾아 내고자 했다. 

비록 그 방안과 방법에 있어 본 독자는 문제가 있고 오해를 불러 올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지만 이는 저자 오강남이 생각하지 않은 본 책으로 인한 오해와 저자의 의도가 훼손할 수 있는 실수를 지적하기 위함이다. 위와 같은 문제점을 유의하며 책을 읽는다면 교양서로서 접하기에는 좋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와 같이 종교간의 이해와 상호보완을 위한 종교서적은 많지 않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것은 단순히 도마복음에서 종교간의 공통분모를 추구하자는 것이 아닌 종교간의 공통성과 상호보완 그리고 이해를 추구하는데에 있다. 

저자 오강남은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대화 라는 제목으로 대화와 협력의 관계 추구를 위하여 두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함께 일하는것' 시대의 도전에 협력하고 자비와 사랑의 원리에 입각하여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 
둘째 '함께 생각하는것' 사회, 윤리적인 공동 과업에서 건설적으로 함께 힘을 합치는것 

이 두가지가 저자 오강남이 책을 쓴 의도이며 본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위해 도마복음을 통하여 서로간에 이해와 보완이 이루어지길 바랬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도마복음을 통하는 방법은 무리하며 오해를 부르기 쉽다. 

저자가 바라는 상호 존중과 보완의 관점을 가지면서 도마복음과 같은 방안이 아닌 다른 현실적이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방안을 다음 저서에서 써주기를 바란다. 

전체적인 감상은 일부 오류나 저자의 논지인 도마복음은 문제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교양서로는 괜찮다고 보인다. 다만, 비그리스도교인이나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책이 불교적 시선이 강하고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쓰여진 책이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 하며 불교인들 역시 그 점을 주의하며 읽어야지 오해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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