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뱅 푸른도서관 76
김선경 지음 / 푸른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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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을 단숨에 읽는다는 게 말이 되는 걸까? 시라는 것이 본디 시어와 시어 사이에, 행과 행 사이에, 연과 연 사에 쉼표를 잔뜩 넣어가며 읽어야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제대로 읽는다고 하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김선경 청소년 시집 뱅뱅을 난 단숨에 읽어버렸다. 시 한 편 한 편에 쉼표를 마침표를 넣을 수가 없었다. 마치 소설을 읽는 듯 했다.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야기를 중간에 덮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심취했는지 아니면 시의 운율이 탁월해서인지 시가 담고 있는 내용들이 반항적이어서인지 어느새 난 래퍼가 되어 뱅뱅에 담긴 시를 랩으로 읽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대단히 훌륭한 래퍼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했다.

 

시집 뱅뱅청소년 심리를 시로 쓴 보고서라고 하면 예술의 최고 경지인 시를 보고서라고 표현했다고 비난을 받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뱅뱅은 누구나 쉽게 읽고 공감하고 자신을 투영할 수 있어 옆에 있는 친구를 자녀를 나를 다독거려 줄 수 있는 탁월한 심리치료서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교과서에서 난해한 시를 대하는 청소년들이 뱅뱅을 읽는다면 시라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고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정말 친근한 문학 장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시를 만만히 보는 친구도 생길지 모르겠다. 좋은 일이다. 이 시집을 읽는 청소년들이라면 자신들이 품고 있는 고민들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있음을 느낄 것이며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뱅뱅에는 기성사회의 잣대로 청소년들을 재단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는 시들이 다수가 있다. “단수도 그 하나다.

 

단수

이상하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쉴 새 없이 콸콸 흘러나왔는데

 

중학교 입학 후

학년이 올라갈수록

꿈도 희망도

아무리 쥐어짜도

아무리 돌려봐도

 

내 안에서

단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열여섯, 내 꿈 탱크가

단수다, 단수!


 

 

 

청소년들이 꿈을 잃은 것은 그들 탓은 아니다. 오로지 사회적 성공 즉 부의 축적을 인생의 정답으로 만들어 놓고 그리고 몰고 가고 있는 기성사회의 탓이다. 그들이 만든 문제가 아니기에 콸콸 꿈이 쏟아지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는 길이 무척이나 고달프고 지난한 일이 될 것이다. 참으로 마음이 아팠다. 그들의 꿈은 앞으로도 단수 상태에 놓여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사회에서 꿈이 단수된 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다수가 아닐까 싶기도 한다. “단수를 읽으며 나 역시 내 꿈이 단수조치 되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똥통 속”, “운동장 조회”, “그럼 여긴 어디지?” 세 편의 시는 경쟁체제하에서 공부를 못하는 청소년들을 모두 하나로 규정한다. 그들은 똥통이거나 쓰레기다.  그들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프루크수스테스가 되어 철저하게 기성사회의 잣대로 청소년들을 재단하고 그 틀에 끼워 넣는다.


이처럼 "뱅뱅"이 어두운 청소년 사회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모든 시가 무겁거나 부담스럽지는 않다. 우정과 학교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재미있는 에피소드들, 이성과 외모에 대한 고민도 함께 다루고 있다. 특히 다의적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재치와 풍자 위트를 십분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이 시집이 무겁지만은 않은 이유이다. “사이다”, “다독”, “깃발이 청량감을 준다.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담보 잡히도록 강요받는 아이들은

뱅뱅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제자리를 도는 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맴돌고 있어 어지러울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반딧불이고치는 참으로 다독이는 시다. 미래를 열어 놓는 시이고 그들의 가능성을 열어 놓는 시다. 너와 내 목에 걸린 12시간의 올가미로 인해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자유시간에 대한 갈망을 스스로 음미하도록 힘을 주는 시인의 다독이다.


 

 

반딧불이

 

누군가 불을 밝혀 주지 않으면

촛불은 제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

 

누군가 불을 밝혀 주지 않으면

등불은 제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

 

그러니,

반딧불이 되어라.

 

그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제힘으로

어둠을 헤치며

밤을 밝히는

반딧불이



모두가 뱅뱅을 그것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학교 도서관에 꼭 비치가 되어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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