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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졌어 - 평범한 직장인에서 산 덕후가 된 등산 러버의 산행 에세이
산뉘하이Kit 지음, 이지희 옮김 / 인디고(글담) / 2021년 3월
평점 :
나는 산이 정말 정말 싫었다. 중학생 때인지 고등학생 때인지 부모님 손에 북한산에 끌려갔던 적이 있었다. 산악동호회에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으신 우리 부모님은, 피를 어느정도 물려 받았으니 이 정도는 거뜬하겠거니 하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산도 운동도, 그냥 야외활동 자체가 싫었던 그 시절의 나는 북한산에서 도망쳐 내려왔고, 그 후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작년 11월 업무차 제주도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일부러 일정을 여유롭게 잡고 하루를 비워둔채 호기롭게 한라산 등반에 도전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긴 건지 아직도 의문이나, 동료들이 한다고하니 어쩔 수 없이 분위기에 휩쓸린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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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검색해둔 예상 시간에 정확히 2시간이 더 걸렸다. 정말 새벽 같이 출발했는데, 출발지로 돌아오니 저녁이었다.
당연히 녹초가 되었고, 다리는 말도 못하게 아팠다. 오를 때는 괜찮았는데, 내려오는 길에서 방심한 나머지 여러번 발목을 접질린 탓이었다.
분명히 너무나도 힘들고 고된 여정이었다. 생애 첫 등산이 한라산이라고 얘기하면 모두가 놀란다.
나는 아직도 푸르디푸른 하늘과 그 아래 초록의 백록담의 아름다운 조화를 잊지 못한다. 이렇게 산이, 자연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내가 함께 등산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눈을 감고 책 속의 장면을 상상해보면 갑자기 주변 공기가 신선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작가는 정말 그 누구보다도 산을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코로나가 터진 이후로 주말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내 주변에서도 꽤 많이 보인다. 사실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던 것이, 요즘 같은 시국에 삼삼오오 모여서, 그것도 뒷풀이한답시고 술독에 빠지고, 산에서는 여기저기 쓰레기나 뿌리고 다니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등산객들을 그렇게만 봐온 것은 어쩌면 너무 편협한 시각이 아니었을까.
"산행에서 가장 힘든 건 오래 걷는게 아니라 자기 속도가 아닌 다른 속도로 걷는 일이다." (75쪽)
"나는 흐릿하고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마음 편히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늘 산에 가고 싶다. 산에서는 모든 게 확실하다. 해가 따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는 그 리듬이 나를 편안하게 한다." (124쪽)
저자가 산을 사랑하는 것처럼, 요즘은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마냥 부럽다. 순수하게 무언가에 몰두하고 애정을 쏟는 일, 그게 쉽지 않은 일임을 이제는 깨달아서 일까.
아, 날씨도 풀렸는데 이번 주말에는 초록초록 산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