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 뽑은 야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신상필 지음 / 현암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 열풍이 한창인 요즘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속에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많은 사람에게 매력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나는 서양이나 중국 고전에 비해 우리 고전에는 잘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가려 뽑는 야담'으로 조금 쉽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대를 막론하고 뒤에서 수군거리는 이야기가 더 재밌는 법이고 그런 이야기만큼 그 시대상을 잘 반영한 게 없다. 조선시대의 야담집 여섯 권에서 열네 편의 이야기를 가려뽑았으며 쉽게 풀어썼다고 해서 가독성이 좋으리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도 그러했다. 사랑/거지 양반/재주꾼/재물/여성/기인/기이한 이야기라는 각각의 일곱가지 분류에 맞는 야담을 두 가지씩 실었는데 나는 그 중에서 '눈을 쓸며 맺은 인연'과 '두 번의 전쟁을 겪은 가족'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먼저 '눈을 쓸며 맺은 인연' 은 기생인 자란이 관찰사 아들이었던 도령과 맺어져 그를 뒷바라지하며 출세시키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했더니 예전에 '옥소선'이라는 제목의 글로 읽은 적이 있었다.(자란의 호가 옥소선) 관찰사 아버지의 임기가 끝나자 자란의 옆을 떠나게 된 도령은 "뭐. 제가 걔 하나 못 놔두고 떠나겠어요?" 라며 뭣도 모르는 소릴 한다. 그 말을 들은 그의 아버지는 "우리 애는 정말 장부답구만." 이라고 말하는데, 당시 조선 사회가 생각하는 장부다움이 뭔지 알 것만 같아 약간 짜증이. 그런데 그렇게 자란이를 떠난 후, 그녀의 소중함을 깨닫고 무려 한달동안 고생하며 그녀를 찾아간 부분에 이르자 그 짜증이 조금 누그러졌다. 하하. 이 부분에서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그 시대 사람들이 아마 꽤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그려내어, 당시 사회에 내재하고 있었을 신분제에 대한 불만 혹은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고자 했던 것 같다. 게다가 천한 기생의 신분이지만 누구보다 영특하고 지혜로운 모습으록 그려진 자란의 모습을 통해, 당시 이상적으로 생각하던 여성상을 추측해 볼 수도 있다. 현대에 와서는 신분에 억압받지 않고 자신의 지혜로움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여성들이 많아졌으니, 조선시대 사람들의 이상이 지금에 와서 어느정도 충족된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더욱'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들의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고 말이다.

그리고 '두 번의 전쟁을 겪은 가족' 한 일가가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며 헤어졌다가, 고난을 극복하고 다시 만나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당시 조선사람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일가가 뿔뿔이 흩어지거나 주위 사람들이 죽는 등의 고통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야담속에서나마 기적적으로 다시 만난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귀신이 감동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를 통해 정말 지극한 정성으로 바란다면 이루어진다고 믿었을 조선 사람이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 생각은 지금까지도 사람들 공감대의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니, 인간의 근본적인 바람은 거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느꼈다.

조금 더 취향에 부합했던 작품들을 포함, 총 열네 편의 작품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조선 시대 사람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다. 확실히 이야기가 나온 배경에는 그 시대 사람들이 사상이 깔려 있기 때문에,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또 그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비교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 달라진 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찰해 볼 수 있었기에, 짧았지만 우리 고전과 만난 시간은 무척 뜻깊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사족. 확실히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열네편의 이야기는 적다. 더 찾아볼 필요성을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