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에는 정말 괜찮을 거예요 시요일
시요일 엮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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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시큐레이션 앱 "시요일"이 엄선한 시선집으로 졸업과 입학 등 새로운 시작을 앞둔 모든 이를 응원하는 마음을 담은 70여 편의 시를 균형감있는 안목으로 가려 뽑았다.

어느새 혼자 먹고 혼자 놀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 잠드는 "혼자의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우물에 갇힌 듯 답답하고 친구들과 커피 한잔 마시며 일상의 피로를 털어버리는 것 조차 조심스럽기만 하고 숨쉬는 공기까지 미세먼지로 텁텁하기만 하다.

멈춰버린 일상속에서도 길가에 피어난 목련과 벚꽃은 어느덧 봄이 찾아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봄이라는 계절은 얼어붙은 마음을 설레게 하고 답답한 집에서 벗어나 세상밖으로 훌쩍 떠나고 싶게 만드는 생기와 희망의 전령인가 싶다.
따뜻한 봄날 시집 한권과 함께 마음을 다독이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위안을 삼아보면 좋겠다.

"당신을 위해 꽃다발 같은 책 한 권을 읽습니다.
한 편 한 편의 시가 다 살아있는 꽃들이에요.
색깔도 모양도 향기도 피고 지는 속도도 다 다르지만 차가운 고립이 아닌 다정한 고요 쪽으로, 허무한절망이 아닌 찬란한 내일 쪽으로 당신을 이끌어주는 것은 시인 것은 분명해요.
이 시들이 당신의 고독한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는 당신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어깨를 다독일 수 있다면, 당신 마음속에서 소리 없이 피어나 환히 저물 수 있다면"


나는 오늘/ 오 은

나는 오늘 나무
햇빛이 내 위로 쏟아졌다
바람이 몸을 맡기고 있었다
위로 옆으로
사방으로 자라고 있었다

나는 오늘 유리
금이 간 채로 울었다
거짓말처럼 눈물이 고였다
진짜 같은 얼룩이 생겼다

(중략)

나는 오늘 종이
무엇을 써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텅 빈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사각사각
나를 쓰다듬어 줄 사람이 절실했다

나는 오늘 그림자
내가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잘못한 일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생략)

내 마음은 하루 종일 너무 바쁘다. 나의 변덕과 잘못으로 마음이 무겁고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햇빛과 바람같은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 있다면 힘을 내어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 시집의 메시지도 바로 그게 아닐까 싶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실패한 게 아니라는 것, 잠시 멈추어 서서숨을 고르고 실수를 통해 배우고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서로 손을 내밀어 준다면 산다는 게 그렇게 외롭고 힘든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단단한 고요/김선우

마른 잎사귀에 도토리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다 멍드는 소리 멍석 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 길 날아온 늙은 잠자리 체머리 떠는 소리 맷돌 속에서 껍질 타지며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근대며 어루만져주는 소리 보드랍고 찰진 것들 물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인사 하는 소리 아궁이 불 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아주는 소리

도마위에 다갈빛 도도리묵 한모

모든 소리들이 흘러 들어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 저토록 단단한,

딱딱하고 맛없는 도토리가 말랑말랑한 도토리묵이 되기까지 이렇게 많은 일들과 다채로운 소리가 필요하다니!
눈을 감고 도토리들이 서로 부대끼며 가루가 되고 엉기며 묵으로 재탄생하는 길고 복잡한 여정을 곰곰이 되새겨 본다.

우리도 한개의 도토리처럼 혼자서는 존재감이 없지만 서로 모여 부딪치기도 하고 어울리기도 하고 친구와 이웃이 되어준다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단단하면서도 고요한 우리.


아무 다짐도 않기로 해요/유병록

우리 이번 봄에는 비장해지지 않기로 해요
처음도 아니잖아요

아무 다짐도 하지 말아요
서랍을 열면
거기 얼마나 많은 다짐이 들어 있겠어요

목표를 세우지 않기로 해요
앞날에 대해 침묵해요
작은 약속도 하지 말아요

겨울이 와도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돌아보지 않기로 해요
봄을 반성하지 않기로 해요

봄이에요
내가 그저 당신을 바라보는 봄
금방 흘러가고 말 봄

당신이 그저 나를 바라보는 봄
우리 그저 바라보기로 해요

그뿐이라면
이번 봄이 나쁘지는 않을 거에요.

봄이 되면 습관처럼 목표를 세우고 다짐을 하고 탁상달력에는 지켜야 할 약속들과 해야할 일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지키지 못한 약속과 목표, 다짐들을 바라보며 나의 게으름과 부족함을 반성하고 자책하게 되는데.

그래도 한번쯤은 수많은 목표와 다짐과 약속들을 서랍에 넣어 두고 후회와 반성도 잠시 쉬고 이번 봄을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해보면 어떨까!

기도/이정록

한겨울 연못 연밥 본다
그을린 가마솥 본다 저게 연의 가슴이구나
눈보라가 밥물을 잡자 살얼음이 가늠한다
낱알마다 다시 작은 솥단지가 하나씩이다

연잎과 연꽃이 우러러 받든 하늘
그 하늘의 휘파람을 겨우나 끓이면 봄이 온다
진흙공책에다 고개를 꺾는 복학의 계절이다
이곳저곳에 밑줄긋지 말자.
꺾인 연밥의 고개를 세우고 상처를 쓰다듬는다
이렇듯 밑줄은 단 한번만 긋는 것이다

끝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마침표부터 찍는다
기도는 그 마침표에서 싹을 꺼내는 것
꽃과 밥은 언제나 무릎에 주시었나니
두 무릎에 연꽃이 필 때까지

연꽃도 연잎도 다 시들어 사라진 한겨울 쓸쓸한 연못에서 시커멓고 고개숙인 연밥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기도의 마음을 보낸다.
어떤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의 시가 소외된 사람에게 한 공기의 뜨끈한 밥이 되진 못해도 그들을 기억하는 눈물 한방울은 되었으면 좋겠다"

공감과 통찰, 위로와 시적인 아름다움이 담긴 이 예쁜 시집이 새출발을 앞둔 새내기들이나 고된 일상에 지친 평범한 이들이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보면서 위안과 벗이 될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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