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도시, 두번째 예술 - 국적과 국경을 뛰어넘은 어느 사회학자의 예술편력기,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노명우 지음 / 북인더갭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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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피렌체, , 파리, 베를린,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리고 다시 서울.....

  사회학자 노명우의 세계 예술도시 여행기

 

"책읽기는 가장 여행을 닮은 행위 "라고 한다. 책을 펼치는 순간 잠시 일상을 접어두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없이 떠나고 싶은 상상의 세계로 날아갈 수 있어 행복했다.

 

이 책은 짧은 시간에 사진찍느라 바빴던 "첫번째 여행"에서 국경과 국적을 초월한 예술언어의 관점에서 그 도시가 오랜 세월 품고 있는 예술을 향유하는 "두번째 여행"의 기록이다.

도시가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은 영원하지 않다. 화려한 영광과 쇠락과 소멸의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예술가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면서 도시는 특유의 예술적 분위기를 형성한다마치 고고학자처럼 도시의 지층을 한겹 한겹 파고 들어 감추어진 유물을 발굴하듯 그 도시만의 독특한 예술의 사회사를 파헤치는 작업이 무척  흥미롭고 때로는 감동적이었다.

 

독일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던 저자는 유학 시절 언어의 장벽으로 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중 박물관과 미술관의 예술작품을 접하면서 국적과 국경을 초월한 세계언어로서의 "예술언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예술도시여행의 출발점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의 모국어로 이야기할 때는 국적을 지닌 특정인이지만, '바벨탑'의 언어적 한계를 뛰어넘은 예술로 이야기할 때는 국적을 지닌 인간이 아니라 보편언어로 의사소통하는 '예술 - 인간'이다. 지금 이 방(미술사박물관)엔 예술이라는 보편언어를 사용하는 '예술 - 인간'이 모여 있다.(39)

 

저자는 아르데슈 협곡의 쇼베동굴에서 최초의 호모사피엔스, '예술 - 인간'의 원형을 만나게 된다.

시공간의 차이에 관계없이 예술을 통해 현재의 한계를 벗어나기를 상상하고 경제적 유용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인류의 보편언어로 대화하기를 희망하는 기원전 37천 년 전의 호모사피엔스와 현재의 호모사피엔스가 만나는 것으로 예술도시 여행이 시작된다.

 

인간의 생애와 이 도시를 비교하자면, 오스만 제국의 이스탄불이 성숙해서 아름다운 중년기였다면, 콘스탄티노플로 불렸던 로마제국의 시간은 그야말로 눈부신 젊음의 시기이지 않았을까.

지금 이스탄불의 한 카페에 앉아 터키식 커피를 주문하고 이 도시의 휘황찬란했던 젊음의 시기와 몰락을 생각한다.(85)

 

어떤 제국도 몰락을 피할 수 없듯,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생로병사의 운명 앞에서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우리를 위로해 주고 구원해 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이스탄불은 어느 도시보다도 종교적인 도시이다.

이스탄불의 지층을 한겹 한겹 파헤치다 보면 과거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도시와 그 이전 로마제국의 기독교도시 콘스탄티노플이 서로 만나게 되는데 정말 신비로운 경험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동서양의 대조적인 이미지가 뒤섞이고 깨지는 당황스러움!

 

이스탄불에서 콘스탄티노플의 권력자인 유스티니아누스가 권력의 힘으로 인간의 유한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망을 담아 건설한 성 베드로 성당,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나 마우솔레움을 바라보면서  '구원'을 향한 인간의 소망에 대해 생각해 본다. 종교의 본질이 구원이라면 예술은  인간의 몫이라는 것을.

 

이스탄불이 종교의 도시라면 15세기의 피렌체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도시이다.

피렌체의 실질적인 지배자 메디치가문은 교황과 정치 지도자를 배출하는 한편 수많은 예술가와 학자들을 후원하고 건축물과 예술작품을 남겼다

 

메디치는 귀족도 왕족도 아니다. 그들은 평민이다. 돈의 힘으로 그들은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하지만 돈의 힘은 매우 위태로웠다. 돈의 힘에 의지한 권력자인 메디치 가문에게 평판 유지는 권력유지의 핵심요소였다.

좋은 평판을 획득할 수 있는 첫번째 방법은 피렌체 시민의 공통분모인 신앙에 대한 아낌없는 후원이었고, 두번째는 피렌체를 예술로 표현하는 것이었다.(163)

 

잘츠부르크의 신동 모차르트는 아버지와 같은 왕에게 예속된 궁정예술가가 되기를 거부하고 빈으로 떠나 자유로운 예술가가 되기를 희망했다는 점에서 시대정신을 읽은 천재음악가라고 할 수 있겠다.

궁정 안의 왕과 귀족을 위한 전근대적인 음악가에서  궁정밖의 관객을 위한 자유예술가의 출발점으로서, 모차르트 이후 전통을 배격하고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예술가들이 쉼없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피카소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병든 아버지 생각뿐이다. 피카소에게 그림을 가르쳐주었고 피카소가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초월적인 아버지, 피카소는 열여섯살에 이런 말을 했다.

예술을 하려면 자기 아버지를 살해해야 한다.(182)

 

1853년 파리지사인 조르주-외젠 오스망은 "파리대개조"에 착수하여 귀족의 중세도시였던 파리를 세련되고 역동적인 세계도시로 거듭나게 되었다. 2제정기의 파리는 "모두가 눈요기"라는 보들레르의 표현처럼 우리가 한번쯤 들어본 적 있는  수많은 예술가들과 관광객들의 무대가 되었다.

마네, 모데, 드가, 보들레르, 발자크, 릴케, 사르트르, 작가 지망생이었던 헤밍웨이와  조지오웰 등...

조지오웰은 이 때 호텔에서 접시닦이로 연명했던 밑바닥 생활을 바탕으로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 이라는 책을 썼는데 나도 고등학생 때 읽은 기억이 난다.

자본주의 이면의 소외된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잡초같은  생명력에 경외심을 보이고 사회제도의 맹점을 고발하는 조지오웰다운 책이 바로 여기서 만들어졌다니..

 

릴케가 묵었던 호텔 비롱, 헤밍웨이가 글을 쓰던 카페와 조지오웰이 접시닦이로 일했던 파리의 호텔은 지금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관광객과 예술가의 숨박꼭질과도 같은 매력적인 도시 파리에 나도 떠나고 싶다!

 

언제나 그렇듯 모든 여행은 귀가로 마무리된다.

도시는 나의 스승이 되고 나는 기꺼이 학생이 된다. 이 도시를 걸을 수록 나는 달라진다, 내일 또 걸어야겠다. 걷는 상상을 하며 잠이 들면 항상 단잠을 잔다.(427)

이 여행기의 마지막 장은 모국어의 도시 서울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구대암각화'를 보면서 쇼베동굴에서 만난 최초의 호모사피엔스와 만나고, 나라에서 금지한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사형당한 이들의 사형터가 공원으로 변모한 곳에서 '콘스탄티노플'을 발견한다.

광화문 광장을 지키는 세종대왕과 이순신장군의 동상, 전옥서 터에 세워진  전봉준 동상을 보면서 피렌체를 발견하고, 박지원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를 탐색하려고 한 백탑파(북학파)의 상징이었던 원각사 탑에서 빈을 만난다.

마치 내가 서울 거리를 걸으며 서울이  품고 있는 화려했던 빛나는 순간과 암울하고 절망스러웠던 순간을 발굴하는 듯한 상상에 빠졌고 "쇠락과 소멸이 있어 아름다운 것이 예술"이라는 저자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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