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눈의 산토끼 - 잃어버린 가족의 역사를 찾아서
에드먼드 드 발 지음, 이승주 옮김 / 아르테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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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눈의 산토끼, 에드먼드 드 발

호박눈의 산토끼를 집어든 것은 '가디언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 100권' 이라는 홍보문구 덕분이다. 이코노미스트, 데일리 텔레그래프, 이브닝 스탠더드 올해의 책, 코스타 문학상, 갤럭시 신인작가상, 영국왕립문학협회 온다츠상, 윈덤 캠벨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유럽에서 유명한 유대인 은행가 가문 에프루시의 150여년의 역사는 1,2차 세계대전과 근현대사의 중심인 유럽과 일본에서의 삶을 아우르며 생생한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 책을 쓴 영국 도예가 에드먼드 드 발은 게임브리지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였지만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떠나게 되고 도예전문가였던 친척 이기에게서 도예를 배우며 그의 죽음 이후 네쓰케 264점을 상속받게 된다.

500여 페이지를 할애해 묵직하게 담아낸 역사의 소용돌이의 이야기들은 손안에 쏙 들어가는 '네쓰케'의 작은 몸집에 비해 굉장히 묵직한 이야기들이다. 저자가 도예가이기 때문에 호박 눈의 산토끼 곳곳에 흩뿌려진 도예가 정신이 깃든 독백들이 나는 좋았다. '물건'이라는 것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나에게 있어서 처분해야 할 대상으로 종종 생각될 때가 있지만 사실 하나의 작은 물건 속에 깃든 역사, 생각, 마음 등을 헤아려 정리해낸 저자의 끈질긴 탐구, 행동력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물건이고, 그것이 저자의 손끝으로 우리에게 읽혀져서 정말 다행이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박완서 작가님은 이 책을 쓰시면서 전쟁을 거친 1900년대의 한국 역사를 기록해야할 의무와 책임감으로 완성하셨다고 하던데, 아마 에드먼드 드 발 작가도 동일한 신념을 지녔을지도 모르겠다.

네쓰케란 에도 시대의 담배함으로 끈으로 옷에 묶고 다닌 물품이다. 저자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고 달그락거리면서 손으로 만지며 그 촉감을 느꼈다고 하는데, 도예가다 보니 손끝에서 빚어지는 사물에 대한 경외가 담겨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예가로서의 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삶에 대한 관찰에서 몇가지 인상깊었던 구절

'불필요한 동작을 삼가야 한다. 적을 수록 좋은 것이다.'

일본 도예가 이기가 한 말이고, 불교사상이 깔린 일본에서는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것에 대한 당연한 가르침이나 서양에서는 '절제되었다고' 보여질 수 있겠다 싶다.

이 모두가 중요한 이유는 물건을 만드는 일이 내 직업이기 때문이다. 물건이 어떻게 다뤄지고, 사용되며, 대물림되는가는 내게 그저 고만고만한 관심사가 아니다. 그건 내 문제다. 지금까지 나는 수천개의 도자기를 제작해왔다.....도자기의 무게감과 균형감을 기억하고 표면과 입체의 전체적인 조화에 능숙하다....

작가의 도예 전문가로서의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어떤 전문가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 자신의 직업정신이 깃든 모먼트를 기록하는 건 정말 경외심에 가까울만큼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포스팅에 담기엔 너무나도 방대한 양이지만, 내가 느낀 점은 호박 눈의 산토끼 이 도예품에 담긴 역사의 흔적이 바로 유대인 저자의 이야기로 시작되고 끝났기에 나는 이 속에서 우리 피와 눈물로 얼룩진 한국 근현대사를 떠올리게 된다. 특히 갖혀지내던 유대인 선조들이 마침내 자유를 찾던 그 순간 기록들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 울분에 차있을 법도 한 역사가 객관적으로, 사실에 고증하여 쓰여진 장면을 마주할때, 고스란히 감정이입 하게 되면서 우리 역사에서 호박눈의 산토끼는 무엇이었을까. 그 숨쉬는 물건과, 그 속에 숨겨진 살아숨위는 역사를 마주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호박 눈의 산토끼는 비단 유럽과 일본만의 역사를 간직한게 아니라 전세계 역사 속에서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자전적 회고록으로 기록될 것이다.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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