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 - 꼼꼼하게 들여다 본 그 짐승

비스트 ㅣ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책 제목을 비스트 대신 짐승으로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어요.

범죄자 입장에서 보는 범죄 현장을 묘사한 도입부는 개인적으론 19금 판정을 받지 않은 것도 신기할 정도로 셉니다.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이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어떤 정의감이나 도덕심, 상실감에 바탕해서 움직이는데 이 범죄자 만큼은 그런 묘사가 없는 소아 강간살해범이에요.

잔인하게 어린이들을 살해한 이 남자가 교도소 호송 중 탈출해서 또 한 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독자를 긴장케 하지만, 오락적인 스릴러는 아니고,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인간의 증명이 생각나는 범죄 고발물? 르포?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긴 도입부만 봐도 오락물은 아니다 싶어요. ㅠㅠ) 긴박감을 주고자 했다면 희생자 아버지가 범인을 XX하는 장면도 그렇게 심심하게 넘어가지 않았을 거고, 많은 인물들의 배경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을 거예요. 다만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책의 강점은 홍보에서 보듯, 범죄자 세계의 꼼꼼한 묘사에 있다고 봅니다. 교도소의 죄수들, 교도관들, 경찰과 검찰 및 변호사, 판사들이 상당히 생생합니다. 또한 짐승 같은 범죄자를 살려둘 필요가 있는가, 재범이 눈에 불을 보듯 뻔한데 극단적인 방법으로라도 그걸 막는다면 그건 정당한가, 이런 쉽지 않은 질문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머리로는 사적인 단죄는 안되지 싶은데 내가 그 입장이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이런 거죠.

안타깝고 먹먹한 마음은 이야기 속의 인물들이 다 실제에 바탕하고 있다는 데서 옵니다. 게다가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런 상황이 조금씩 나아질까 하는 생각도 쉬이 들지 않아요. 감정적으로 읽기 어려운 책이었지만 지루한 느낌은 없었고 생각할 거리를 꽤 남겨 주었습니다. 추리소설로 여름휴가를 날 시기는 좀 지난 것 같으니, 마음 먹고 읽어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