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이디스 워튼 지음, 김율희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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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시대

이디스 워튼, 김율희옮김

윌북 펴냄


그런 순수함은 아이가 상대방을 온전히 믿고 손을 꼭 잡는 것처럼 감동적이었다. 그 순간, 호기심 없는 그 침착한 태도 밑에 숨은 열정적인 관대함이 기억났다. 그가 보퍼트가의 무도회에서 약혼을 발표하자고 설득할 때 메이가 보여주던 이해심 가득한 눈빛이 떠올랐다. 선교회 정원에서 "다른 사람에게 잘못을 저지르면서...... 행복을 얻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말하던 그 목소리가 귓전에 생생했다. 메이에게 진실을 털어놓고 그 관대함에 자신을 맡기며, 한때 그가 거절했던 자유를 달라고 말하고 싶은 갈망에 걷잡을 수 없이 사로잡혔다.

509쪽


작가 이디스 워튼은 뉴욕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 유럽의 다양한 나라를 경험한 신여성으로 <순수의 시대>는 그녀의 가정환경 및 유럽을 바라보는 미국인의 시선 등을 유려한 문체로 표현한 작품이다. 단순히 세 인물의 갈등을 넘어서 당시 호화로웠던 뉴욕 부유층의 분위기와 체면을 중시했던 당대 보수적인 모습을 대비시켜 묘사한 소설로, 이디스 워튼 말년에 집필된 명작 중 하나이다.

작 중 주요인물 뉴랜드 아처, 메이 웰랜드, 엘런 올렌스카 세 명이다. 남편과의 불화로 고향 뉴욕에 돌아온 엘런 올렌스카와 약혼을 앞둔 뉴랜드 아처, 메이 웰렌드가 접견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엘런 올렌스카는 자주 어울려 놀았던 어린 시절 뉴랜드 아처가 그녀를 좋아했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있었던 사실을 내비치는데, 이 부분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복선처럼 느껴졌다. 모종의 이유로 뉴랜드 아처는 앨런 올렌스카에게 접근한다. 그리고 그녀의 황량함, 어떤 달관이 느껴지는 아름다움에 빠져든다.

그러나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던가, 유럽에서 한 차례 불행으로부터 도피한 앨런에게 뉴욕은 또 다른 절망을 안겨준다. 더 이상의 밑바닥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건만 이젠 가문이 외면하는 추문의 이혼녀가 될 것인가,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백작부인이 될 것인가의 기로에 놓였다. 아처는 엘런 엮이며 메이의 위선적인 미소와 속아넘어가주는 듯한 태도에 점점 회의감을 느낀다. 과연 엘런과 아처는 사회 문화를 뛰어넘은 세기의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메이의 운명은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순수의 시대>에서 뉴랜드 아처, 메이 웰랜드, 엘런 올렌스카는 각기 다른 순수의 면모를 보인다.

뉴랜드 아처는 일전에 비슷한 가십, 유부녀와의 연애로 한 바탕 사교계를 시끄럽게 한 전적이 있다. 얼마나 깊었던 세기의 사랑인지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이를 통해 뉴랜드 아처는 관습을 따르고 체면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인물이지만 가슴 한 켠엔 금단의 사랑에 대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본인이 대외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비춰지는지, 어떤 이미지로 형상화되고 싶은지도 확실히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맹목적인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는 데에 있어서는 세속과 영 딴판인 인물이다.

메이 웰렌드, '순수'의 표현이 잘 어울리는 행색과 강인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명예로운 집안에서 태어나 여성은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불합리한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는 아처가 엘런의 마음을 가장 잘 보듬어주었음을 알고 있다. 순수를 지향하고 앨런의 상황에 연민을 빙자한 친절함으로 답하지만 그것으로 끝. 또한 결정적인 순간에는 예상치 못한 분별력을 발휘해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임을 반추할 수 있다.

답습되어온 대로 유럽의 부유층과 혼인하지만 불행한 결혼생활 끝에 미국으로 도주한 앨런 올렌스카, 그녀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보수적인 상류 계급들은 그녀에 대한 풍문을 더욱 부추긴다. 순수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평화와 안정을 기대했건만 원색적인 선입견을 숨긴 채 가면을 쓴 사람들을 마주하고 상처받는다. 타인에 의해 부추겨진 삶은 자유로웠던 그녀의 품위를 옅여지게 했다. 다만 실추된 명예로 인해 쉽사리 불순(그 시대 기준으로)해질 수 있음에도 올렌스카는 결국 예외없는 1800년대 여성을 선택한다.


윌북의 첫사랑 시리즈로 다시 만난 <순수의 시대>를 읽으며 사회적 통념과 사랑이 대척점에 위치한 것만큼의 비극은 없다고 느껴졌다. 순수가 허락되지 않은 시대여서 더 빛났던 그들의 운명, 본인들의 의지보다는 사회의 위치에 걸맞는 기품을 강요받았던 시대였기에 <순수의 시대>는 작중 인물들에게 아쉬움이 남는 선택지만을 제공한다. 그렇다면 관습에 덜 얶매이는 현재에는 순수라는 가치가 통용될까? 순수라는 미명의 금지된 사랑은 통시적인 선악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절제로 마무리된 사랑이었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순수의 시대>, 나에게 남은 순수함을 되돌아보게 한다.

​본 서적은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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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자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4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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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이후 프롤레타리아적 사상을 조금은 배제한, 신구세력의 갈등과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적 공통분모로 엮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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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피아빛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06
이사벨 아옌데 지음, 조영실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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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문학의 표상 이사벨 아옌데가 포착한 자유와 억압사이의 인물들은 과연 결국엔 구원받았을까, 피와 눈물 없이는 한줌 모래처럼 사라지는 그들의 삶. 바스러져간 영혼을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본 이사벨 아옌데의 문학을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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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덕후 현정쌤의 50일 드라마 중국어 말하기 : 원어민 어감 살리기 편 - 지금 당장 중국에서 써먹는 100가지 상황별 표현
박현정 지음 / 시대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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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를 배우기 가장 좋은 방법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구어를 익히는 것이더라구요. 중국어 말하기,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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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철학 - 실체 없는 불안에 잠식당하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사는 법
기시미 이치로 지음, 김윤경 옮김 / 타인의사유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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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의 철학

기시미 이치로

타인의 사유 펴냄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에서 받은 충격, 소위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경험속에서 자신의 목적에 걸맞은 것을 찾아낸다. 자신의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자신이 부여하는 의미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특정 경험을 미래의 인생을 위한 기초라고 생각할 때는 필시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는 상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황에 부여하는 것이다." (알프레드 아들러, <다시 일어서는 용기>)

- 28쪽


불안은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만들어 낸 거짓 감정이다! 라는 소개문에 시선이 꽂혔다. 왜냐하면 실제로 불안증 스펙트럼에는 공황장애, 광장 공포증, 선택적 함구증 등 원인을 한마디로 규정하기 힘든 인지적 질병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증상에 따라 회피, 관심을 유발하는 신체증상 및 고통 호소가 동반하기 때문에 "꾀병"처럼 보일 수 있고 실제로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다. 그러나 실제 공황장애로 고통을 겪어본 나로써, 조금 안일하게 느껴지는 소개문이었다. 

저자는 불안이라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과거의 경험이나 다가오지 않을 미래에 대한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인지적인 착오로 인해 유발되는 감정이다. 즉, 불안이라는 감정이 아예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 동반되는 심적 고통은 인정하되 수용하는 태도를 조금만 고친다면 불안을 소거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불안의 철학>에서는 이처럼 우리가 "불안"이라고 명명한 다양한 감정에 대처하는 방법을 아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우선, 불안을 유발하는 것들이 무용(無永)함을 인지해야한다. 불안을 유발하는 고통스러운 과거와 알 수 없는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다. 실재하는 것은 지금 직면한 현실뿐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가 겪는 불안의 절반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부재, 절망, 실패 등의 감정이 불안을 발현하는 요소임을 지적했다. 우리가 당면하는 감정은 틀림없는 실재이지만, 그 안에서 불안을 발견하고 고통으로까지 승화시키는 것은 우리 본인인 것이다.

물론 현재 공황장애로 고통받는 당사자에게 "그 원인이 당신에게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습니다","정면으로 맞서지 못한다면 마음가짐을 달리 해보십시오" 와 같은 조언을 해도 큰 효과는 없다. 병원 치료를 받아도 상담자에게 과거에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열거하거나, 두근거림과 각종 신체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약물을 처방받을 뿐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불안의 철학>을 읽는다. 되려 해결하고자 하는 집착을 내려놓고, 차분히 저자 기시미 이치로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금 내가 겪는 불안의 대상과 목적은 무엇이고, 또 그것을 "불안"이라는 명분 하에 실체없는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사유한다.



그래서 <불안의 철학>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갖가지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떻게 그것을 반전시키고 때로는 수용할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소개문에 "냉철하다"라는 표현이 적혀있지만, 알고 보면 "매우 친절한" 불안 설명서라고 느껴졌다. 마치 말씨은 친절하지만 핵심은 피해서 가르쳐주는 상사가 아닌, 내리 꽂는 발언이나 직접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상사의 느낌이랄까. <불안의 철학>은 종종 스스로의 마음이 단단해져야함을 강조하는 듯 해서, 현재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는 조금 차갑고 낯선 조언으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말씨는 친절하지만 핵심을 피해서 가르쳐주는 상사(결국 얻어가는 것이 없음)와 내리 꽂는 발언이나 직접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상사(마음만 먹으면 잔뜩 배울 수 있음)를 선택하는 것은 이제 본인의 몫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불안을 타파하고 삶과 본인을 더 관용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본 서적은 리딩투데이에서 지원하는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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