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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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해보라. 그러면 강철처럼 단단한 화음으로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영원에의 한없는 갈망과 유한성에의 깊은 절망으로 다그 찬 하나의 언어를 듣게 되리라. 돌처럼 굳은 왕들의 시선은 수천수만의 노예들을 무정하게 스쳐, 그 모든 사람들과 사물을 못 본듯 지나쳐, 다만 시커먼 죽음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신성한 동물들은 지극히 현세적인 엄숙함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무희들의 손끝에선 은은한 연꽃 향내가 

묻어난다. 이 '이집트'라는 단어 하나만 해도 광대한 하나의 세계, 온 세상을 품고 있는 별천지이니, 그대는 이 한마디로 한 달 내내 아름다운 공상에 젖을 수도 있으리라

- 124쪽, 시에 대하여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를 읽기 전에는 헤르만 헤세가 서평가이자 책을 탐미하는 사람임을 알지 못했다. 그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문학의 대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책에 관한 글을, 그것도 저명한 사람이 집필한 작품은 처음이라 관심이 갔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를 비슷한 이유로 흥미롭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사람마다 어떤 계기로 책과 가까워지는지는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힘든 나날에는 책을 도피처로 삼다가 근래 들어 즐기기위해 책을 읽는다. 그러나 헤세는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일상을 잊고자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어찌보면 독서를 도피처로 삼았던 시절의 나는 독자로서 빵점인 것이다. 또한 책에서 헤세는 책을 인격체로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연장선에서 바라본다면 친구를 도피처로 삼는 것은 지양하라는 것과 비슷한 의미 같았다. 친구를 도피처로 삼는건 아무래도 교우관계에서 좋은 면모는 아니기 때문일지도.

이렇듯 인격체로써 책을 대하는 헤세는, 독서으로써 스스로를 도야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할 것을 명시한다.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책을 읽는다면 그 책은 온전히 곁에 남아 일부가 되어줄 것이다.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마음을 나눌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라 부르기 어렵다. 그러므로 헤세는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상호 합의가 이루어지는 교우관계와 달리 책은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든, 손을 뻗으면 함께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책을 존중하고 인내하여 경청한다면 책은 언제든 당신에게 필요한 해답을 선물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친구, 즉 좋은 책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헤세는 걸작들의 가치를 검증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가 자격을 갖출 것을 강조한다. <세계문학 도서관 Eine Bibliothek der Weltliteraur> 파트에서는 어릴적부터 세계문학을 다독한 헤세의 추천 서적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범위와 양이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많은 양의 책을 섭렵한 그도 새로운 분야의 책을 판단하고 받아들일 때면 항시 겸손한 자세를 유지한다니, 왠지 반성하게 된다.

또한 헤세는 본인이 판별한 책을 조금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를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애서가였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애정을 다할수록 친구나 연인을 대할 때처럼 각각의 고유성을 존중해주어야 깊어지고 오래 갈 수 있다" 는 어록은 헤세가 어떤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독서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책을 낯설게 바라보지 않고, 두려움을 던지고 단정과 독선을 내려놓을 것을 권고한다. 나 또한 두려움으로 인해 다독을 하지 못한다. 호기심이 가더라도 어려울까봐, 다 읽지 못할까봐 망설임이 앞서 거부했던 책이 많기 때문이다. 헤세처럼 열린 마음으로 책을 받아들일 때, 그와 같은 넓은 소견과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


책에 대한 헤세의 단상 이외에도 독일 문학, 독자 등을 주제로 집필한 글도 있었는데, 특히 독자의 종류를 분류해둔 부분이 흥미로웠다.

1. 순진한 독자

책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독자들이다. 이들은 내용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책에 나타난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때문에 책과의 관계에 있어서 독자적인 개인, 온전한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없다. 

2. 작가를 추적하는 독자

작품에서 작가가 의도한 그 이면을 찾아내는 독자들이다. 책의 소재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가지 해석과 평가를 제시하는 독자들이다. 이들은 작가가 작품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작품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포착하고 본인만의 방식으로 음미한다.

3. 개성적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독자

이들은 책을 모든 것과 더불어 유희한다. 읽는 것을 타고 떠오르는 충동과 영감의 물결 속을 자유롭게 헤엄쳐다닌다. 작품 해석 뿐만 아니라 활자 그 자체를 즐기며 상상력과 연상능력을 최대로 응용한다.

나는 1번 독자와 2번 독자 사이 그 어딘가 즈음인 것 같다. 


책을 단순한 사물이 아닌 인격체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 헤르만 헤세, 50년 전에 세상에 떠난 그의 세계는 여전히 많은 독자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책은 진지하고 고요히 음미하고 아껴야 할 존재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책은 그 내면의 아름다움과 힘을 활짝 열어 보여준다.

- 헤르만 헤세

본 서적은 리딩투데이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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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시작과 끝에 대한 사색 - 무한한 우주 속 인간의 위치
앨런 라이트먼 지음, 송근아 옮김 / 아이콤마(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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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어간다. 우주의 먼지로써 삶에 대한 가치관을 확장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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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엔딩 크레딧 이판사판
안도 유스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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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곳 주식회사 분유칸

인쇄 도요즈미인쇄 주식회사

제본 주식회사 호코쿠샤'

판권은 책의 엔딩 크레딧이다. 제작에 관여한 모든 이의 이름을 실을 수는 없지만 '도요즈미인쇄주식회사' 너머에는 노즈에나 지로씨, 후쿠하라, 우라모토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종이 구입처를 알아봐 준 게이단샤 업무부의 요네무라 신코나 기후의 이나바 야마지업 사람들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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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들고 싶어 도요즈미인쇄에 근무하는 우라모토 마나부는 오늘도 바쁘다. 위에서 내려오는 오더를 처리하면서 현장과 합의하는 것이 그의 주 업무, 쉽게 말해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우라모토는 그와 같은 업무를 하고 있지만 깔끔한 일처리로 인정받고 있는 나카이도를 보며 언젠가 그를 능가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이례사항이 발생했다. 우라모토는 후지미노 공장에서 현장 총괄을 맡은 노즈에에게 전화를 걸어 작업을 부탁한다. 간혹 손바닥 뒤집듯 계획을 변경하는 출판사와 작가들을 맞추기 위해 부득불 현장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노즈에는 이 상황이 불편하다. 영업부에서 일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공장이 가동된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식은 곤란하다. 열정이 앞서 일을 키우는 우라모토가 원망스럽지만 결국 맞춰준다. 아픈 처남과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수긍해야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원고를 책으로 출간하기 전에 교정 작업을 하는 후쿠하라는 이 일이 천직이라고 확신한다.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했던 후쿠하라는 학창시절 책을 통해 위로받았다. 그래서 막연히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도요즈미인쇄에 입사했다. 덕업일치라고 해야할까, 좋아하는 일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후쿠하라는 책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책의 엔딩 크레딧>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일어나는 헤프닝을 다룬다. 직장생활이라는 내용이 공감을 주면서도 활자로만 접했던 책의 공정 이면을 알 수 있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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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렬한 기세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1호기를 보자 노즈에는 기계를 당장 꺼 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불량품을 대량으로 토해 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 때문이다. 사전 준비 가운데 뭔가를 미흡하게 했던 것도 아니고 그저 막연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공문을 잘못 내렸을 때는 수정된 공문으로 다시 기안하면 된다.(물론 처음부터 잘 작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현장은? 만일 발견하지 못한 오류로 인해 불량품이 대량으로 출고된다면? 부주의로 인해 재정적, 인적 사고가 발생한다면?

현장과 밀접한 업무를 맡았던지라, 노즈에의 긴장을 공감할 수 있었다. 실수는 곧바로 사고로 이어지는 업무를 하며 근무 때마다 긴장했던 나날이 떠올랐다. 그저 막연히 자신이 없었다는 노즈에, 노즈에는 긴장과 숙달을 반복하면서 업무로 인정받아간다.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고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거쳐야하는 과정이라지만, 어쩐지 남일 같지 않아 오래 머무른 단락이었다.


직장 생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읽을 때면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책의 엔딩 크레딧>은 달랐다. 기술직과 본부의 관계, 영업 관련 교섭, 이례사항에 대한 대처, 디지털화로 인한 인력 감소 등 모든 부분이 공감되었다. 특히 디지털화로 인한 인력감소는, 재직 중인 회사가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터라 더욱 와닿았다.

초심이 옅어지고 무기력한 시간이 잦아진다. 그래서 재직 기간이 길어 질수록 나 자신을 회사의 부속품으로 여기곤 한다. 열정을 가져볼까? 그런데 요즘은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젊은이는 되려 바보 소리를 듣는다고 한다. MZ 세대가 말하는 직장인, 일은 딱 정해진 만큼만, 그 이상 그 이하도 하지 않고 남는 시간은 자기계발과 재테크에 쏟는다. 생각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재직 중인 곳이 직원의 능력을 확실하게 인정해주고 성과주의적 면모가 강한 직장이 아니면 대부분 그렇게 된다. 안타깝지만 나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책의 엔딩 크레딧>은 열정으로 꽉찼던 언젠가 우리의 모습을 비춰준다. 작중 우라모토는 인쇄가 모노즈쿠리(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것, 혹은 그 장인)라고 언급한다. 이런 우라모토 뿐만 아니라 <책의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과 성의를 다한 그들의 소명의식이 모여 책이 완성된다.


<책의 엔딩 크레딧> 편집자는 작가가 창작을 하고 편집자가 편집을 하고 마케터가 홍보를 하는 곳의 뒤편에서 누군가가 필름을 출력하고 인쇄판을 만들고 제본을 한다는 걸 독자들도 조금쯤 알아주길 하는 마음에 출간을 결정했다고 설명한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맡은 일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어쩌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들이 가진 마지막 소명의식으로 세상이 굴러가는 것은 아닐까. 복직은 멀었고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보이지 않는 이름이 되어 빛나는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졌다.

P.S

<책의 엔딩 크레딧>을 읽고 알게 된 상식, 책의 페이지는 16의 배수라고 한다.

본 서적은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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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9
엘리자베스 인치볼드 지음, 이혜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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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다 라고 표현하니 복잡한 것을 찾아 헤맬 것 같은 이야기, 작가의 묘사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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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8
이디스 워튼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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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자신의 <순수의 시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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