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를 읽기 전에는 헤르만 헤세가 서평가이자 책을 탐미하는 사람임을 알지 못했다. 그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문학의 대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책에 관한 글을, 그것도 저명한 사람이 집필한 작품은 처음이라 관심이 갔다. 아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를 비슷한 이유로 흥미롭게 바라보았을 것이다.
사람마다 어떤 계기로 책과 가까워지는지는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 힘든 나날에는 책을 도피처로 삼다가 근래 들어 즐기기위해 책을 읽는다. 그러나 헤세는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일상을 잊고자 책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어찌보면 독서를 도피처로 삼았던 시절의 나는 독자로서 빵점인 것이다. 또한 책에서 헤세는 책을 인격체로 대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연장선에서 바라본다면 친구를 도피처로 삼는 것은 지양하라는 것과 비슷한 의미 같았다. 친구를 도피처로 삼는건 아무래도 교우관계에서 좋은 면모는 아니기 때문일지도.
이렇듯 인격체로써 책을 대하는 헤세는, 독서으로써 스스로를 도야하고, 정신적으로 성장할 것을 명시한다.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듯 책을 읽는다면 그 책은 온전히 곁에 남아 일부가 되어줄 것이다.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마음을 나눌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라 부르기 어렵다. 그러므로 헤세는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상호 합의가 이루어지는 교우관계와 달리 책은 우리가 필요할 때 언제든, 손을 뻗으면 함께할 수 있다. 우리가 만나는 책을 존중하고 인내하여 경청한다면 책은 언제든 당신에게 필요한 해답을 선물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친구, 즉 좋은 책을 우리 스스로 어떻게 판별할 수 있을까? 헤세는 걸작들의 가치를 검증하기 전에, 먼저 스스로가 자격을 갖출 것을 강조한다. <세계문학 도서관 Eine Bibliothek der Weltliteraur> 파트에서는 어릴적부터 세계문학을 다독한 헤세의 추천 서적을 만날 수 있는데, 그 범위와 양이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많은 양의 책을 섭렵한 그도 새로운 분야의 책을 판단하고 받아들일 때면 항시 겸손한 자세를 유지한다니, 왠지 반성하게 된다.
또한 헤세는 본인이 판별한 책을 조금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헤르만 헤세의 책이라는 세계>를 읽다보면, 그가 얼마나 애서가였는지 알 수 있다. 특히 "애정을 다할수록 친구나 연인을 대할 때처럼 각각의 고유성을 존중해주어야 깊어지고 오래 갈 수 있다" 는 어록은 헤세가 어떤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독서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책을 낯설게 바라보지 않고, 두려움을 던지고 단정과 독선을 내려놓을 것을 권고한다. 나 또한 두려움으로 인해 다독을 하지 못한다. 호기심이 가더라도 어려울까봐, 다 읽지 못할까봐 망설임이 앞서 거부했던 책이 많기 때문이다. 헤세처럼 열린 마음으로 책을 받아들일 때, 그와 같은 넓은 소견과 창의성이 발현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