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 잃어버린 도시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7일을 읽으며 웃고 울었던 시간이 떠오른다. 위화의 작품은 알 수 없는 세계를 탐구하며 고스란히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데에 그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은 또 어떤 모습으로 독자를 이끌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의 시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7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마였어. 지난번 그놈은 샤이탄이었어." 바로 그것이 그가 듣기에서 들은 말이다. 그가 속았다는 것, 악마가 대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났다는 것, 그러므로 그가 임기했던 시는, 시 천막에서 암송했던 그 시는 진짜가 아니라 정 반대인 사악한 말이었다는 것, 신의 말씀이 아니라 악마의 말이었다는 것.

(...) 그러나 카메라 앵글을 최대한 높게 잡고 두둥실 떠오른 채 지켜보는 지브릴은 한 가지 사소한 사실을 아는데, 지극히 사소하지만 여기서는 약간의 문제가 될 수 있는 일, 그것은 바로, 둘 다 나였어, 바바, 처음에도 나였고 두번째도 나였다고. 내 입에서 나온 말, 앞서 선언한 말도 그렇고 이번에 부인한 말도 그렇고, 시verse와 반시converse, 올바르 시universe와 뒤집힌 시reverse, 전체가, 우리 둘 다 알다시피 내 입은 저절로 움직였으니까.

195-196쪽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는 그의 마법적 사실주의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슬람 문화권의 생소한 서사와 종교적인 단어들로 인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다소 있었지만 [악마의 시]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 작품임에는 확실했다. 특히 등장인물이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생과 생을 거듭하는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점이 그랬다.

[악마의 시 1]은 인도에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지브릴 파리슈타와 영국에서 성우로 활동하고 있는 인도계 영국인 살라드 참차왈라 두 인물을 주축으로 진행된다. 둘은 테러리스트에 의해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한다. 지브릴 파리슈타는 해변가의 여인에 의해 구원받아 대천사의 이름으로 환각을 보며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반면, 살라드 참차왈라는 추락 이후 악마의 모습으로 점차 변해간다.


물 : 사막

삶 : 죽음

/

마훈드 : 힌드

이맘 : 아예사

지브릴 파리슈타의 환각(이자 꿈)에서 그 자신은 대천사 지브릴(가브리엘)로, 신의 계시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먼저 지브릴은 마훈드와의 만남에서 천사와 악마의 경계는 허물어져 있음을 암시한다. 자힐리아는 라트, 마나트, 우자라는 신을 모시며 신전으로부터 수입을 얻는 힌드와 남편 카림 아부가 거주하고 있다. 어느날 아부 심벨은 라트 신에게 신탁을 받아, 예언자 마운드의 세 제자(페르시아인 살만, 물장수 할리드, 해방된 노예 빌랄)에게 시를 지어주기로 결심하며 이를 계기로 마훈드는 콘산에서 지브릴과 대면하게 된다.

이후 지브릴의 계시를 받은 마훈드는 기존의 신(라트, 마나트, 우자)을 모시는 힌드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습격당한다. 힌드는 모래, 마훈드는 물이라는 말과 함께 시공간을 초월한 대척점의 관계가 끝없이 반복될 것임을 암시한다.

지브릴의 또 다른 환각 속에서 이맘은 라트(알 라트)로 추정되는 환신인 아예사를 살해함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아예사는 나비로 둘러쌓인 신비로운 여성 비비지로 이어진다. 지브릴은 비비지와 함께 미르자 사이드 악타르와 그의 아내 미샬 악타르의 집에 머무르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비비지를 티틀라푸르(나비 마을)의 환신 혹은 불가촉 천민 술신의 정신 나간 여성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마을사람 대부분은 그녀를 따라 하느님의 품으로 순례를 떠난다.

지브릴의 이야기가 꿈속에서 일어나는 현실적인 사건이라면, 참차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참차가 악마로 변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유사 매춘을 한 것 이외에는 (지브릴도 마찬가지로 돼지고기를 먹고, 유사 매춘과 불륜을 저질렀다.) 큰 죄를 지은 것 같지는 않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슬람의 종교적 배경과 그 사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 나의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지브릴의 환각 속 인물들이 참차의 현실에서 비슷한 이름으로, 비슷한 갈등을 겪으며 등장한다. [악마의 시]는 과거와 현재, 미래 뿐만 아니라 꿈과 현실까지도 관통하는 넓은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복잡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다소 있었다. 그러나 유일신과 다신교의 관점을 넘나드는 지브릴의 환각과 현실의 번뇌 속에서 악마의 현신이 되어버린 참차의 이야기는 읽을 수록 흥미로웠다. [악마의 시1]을 마치고 [악마의 시2]로 넘어가 멀어진 지브릴과 참차가 다시 만나 어떤 갈등을 빚을 것인지 기대된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퓨처미 다이어리 I&ME - 인문학과 경영철학이 담긴 성장일기
스타북스 편집부 지음 / 스타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생생한 기록보다 희미한 기록이 낫다는 문장이 와닿는다. 아픔이 바스라져 없어진 추억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아프지 않은 추억을 담을 수 있는 다이어리가 되길 바라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쇼샤 페이지터너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정영문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은 불순물 없는 사랑을 추구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가한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본 그는 불현듯 이 모든 것의 낯섦에 충격을 받았다. 이곳, 이 사람들의 집 마당에서, 밀랍으로 광낸 승마부츠를 신고 가서, 말채찍으로 초조하게 자기 종아리를 찰싹찰싹 치면서, 이 시커멓고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자신. 그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이 사람들을 향한, 발치에 누운 남자를 향한 분노를 느꼈다. 그것은 낯익은 낯섦이었다. 마치 자신의 일부가 몸밖에서 자신을 구경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무시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그 감정을 떨쳐냈다. 그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인간적인 충동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우유부단과 유약함이라 생각하고는 두 팔로 들 것 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63쪽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이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등장했다. 이전에 출간된 [낙원]을 읽고 알 수 없는 상념에 빠진 기억이 난다. [낙원]과 같은 문학 작품을 단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작열과 습윤이 오가는 아프리카 대륙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신비감, 야생성 등의 묘사가 생소했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배반]에 대한 기대도 몹시 컸는데, 역시나. 또 다른 충격으로 머리가 멍 해졌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잔지바르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학업을 마친 후부터 영국인으로의 삶을 선택한 디아스포라적 작가다. [배반]은 무리 속 이방인의 이야기를 다채로운 시각에서 풀어냄과 동시에 자전적인 이야기가 가미한 독특한 작품이다. 특히 '배반'이라는 요소로 왜 누군가는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느껴졌다.

[배반]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이야기는 작은 연결고리로 이어져있으며, 책을 덮은 뒤에는 다시 1부로 돌아와 한 번 더 읽게 되는 묘한 끌림이 있었다. 반절 즘 읽으며, 작품의 제목이 왜 [배반]인가에 대한 물음의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서로 다른 그들은 사랑을 했고, 사회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미움과 동경이 응축된 그곳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도덕이었다. 그러나 2부에 도달해 파리다, 아민, 라시드 남매 중 막내 라시드가 영국으로 유학을 결심하면서 "배반"의 의미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배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미움, 불신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수반되는데 반해,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에서 "배반"은 감정이 배제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원제를 찾아보았다. 원제는 Desertion, 배반이라기 보다는 배반감을 느낄만한 개체를 이르는 듯했다.

Desertion

황폐, 황폐한 상태

내버림, 내버려진 상태

탈영

황폐, 내버려짐보다 "탈영"이라는 뜻에 눈이 갔다. 탈영은 "기피할 목적"으로 "지정된 장소"에서 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황폐해졌거나 내버려진 곳, 혹은 그렇게 될 예정인 특정 장소를 "기피할 목적"으로 떠난 상황을 Desertion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남아있는 그들의 집거지가 누군가에게 기피해야할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배반"이 되었다. 떠난 사람은 고통을 함께 나누는 동지가 아니라, 황무지를 뒤로한 채 앞을 나아가는 배반자다. 확실히 "배반"이라는 단어는 조금 감정적으로 느껴졌다. 원제를 찬찬히 살펴본다. 감정의 불순물을 걷어내고 상태만 설명한 이 단어, Desertion. 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버려짐", "황폐" 등과 같은 제목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너무 혹독하게 만드는 제목인 것 같기도 하다.

[배반]에서는 두 이방인을 주로 다루고 있다. 1부는 아프리카 내의 영국인, 2-3부는 영국 내의 아프리카인이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잔지바르출신이지만, 작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는 탄자니아-케냐다.) 1부에 등장하는 마틴 피어스는 식민국 국적인 영국사람이다. 백인이라는 그 자체로 식민지 사람들에게 경외와 두려움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상처투성이의 이 백인과 몇 안되는 식민지의 백인들이 흑인을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자리 잡은 소수는 어찌되었건 상대적 약자다. 그래서 식민국의 그들도 식민지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내재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마틴 피어스가 그렇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명목하에 겨우 목숨만 구한 걸인의 행색으로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2-3부는 좀 더 보편적으로 매체에서 다뤄진 이방인의 이야기다. 선진국으로 떠나, 고향을 뒤로한 채 그곳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만 [배반]의 화자 라시드가 영국으로 떠나며 겪는 불필요한 사건들은 그리 자세하게 묘사되어있지 않다. 대신 작가는 영국인을 선택한 라시드와 조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비참한 상황을 대비시켜 "배반", Desertion 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는 쪽을 택한 듯 했다.

[배반]은 단순히 이민자들과 그들의 운명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 식민시대의 상처가 대를 이어감에 따라 어떻게 대물림 되었고, 그것이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히 적어내려간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삶 자체이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이 작품을 통해 한쪽를 옹호하고, 단순히 피해자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배반]은 압둘라자크 구르나에게 선택할 수 없었던 조국과 선택한 내 나라의 입장에서 적힌 이국적인 시선의 아름다운 회고록이다. 식민시대의 사람들에게 연민의 목소리를 보냄과 동시에 독자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그들의 아픔을 이해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스며든 작품이었다. 생소한 배경과 흥미로운 등장인물, 흡입력 있는 전개로 시선을 끌어당긴 작품인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을 추천한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