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 내버려짐보다 "탈영"이라는 뜻에 눈이 갔다. 탈영은 "기피할 목적"으로 "지정된 장소"에서 이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황폐해졌거나 내버려진 곳, 혹은 그렇게 될 예정인 특정 장소를 "기피할 목적"으로 떠난 상황을 Desertion이라 부르는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남아있는 그들의 집거지가 누군가에게 기피해야할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배반"이 되었다. 떠난 사람은 고통을 함께 나누는 동지가 아니라, 황무지를 뒤로한 채 앞을 나아가는 배반자다. 확실히 "배반"이라는 단어는 조금 감정적으로 느껴졌다. 원제를 찬찬히 살펴본다. 감정의 불순물을 걷어내고 상태만 설명한 이 단어, Desertion. 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버려짐", "황폐" 등과 같은 제목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너무 혹독하게 만드는 제목인 것 같기도 하다.
[배반]에서는 두 이방인을 주로 다루고 있다. 1부는 아프리카 내의 영국인, 2-3부는 영국 내의 아프리카인이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잔지바르출신이지만, 작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는 탄자니아-케냐다.) 1부에 등장하는 마틴 피어스는 식민국 국적인 영국사람이다. 백인이라는 그 자체로 식민지 사람들에게 경외와 두려움을 일으킨다. 그렇다고 상처투성이의 이 백인과 몇 안되는 식민지의 백인들이 흑인을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자리 잡은 소수는 어찌되었건 상대적 약자다. 그래서 식민국의 그들도 식민지 흑인들과 마찬가지로 내재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마틴 피어스가 그렇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명목하에 겨우 목숨만 구한 걸인의 행색으로 발견되었으니 말이다.
2-3부는 좀 더 보편적으로 매체에서 다뤄진 이방인의 이야기다. 선진국으로 떠나, 고향을 뒤로한 채 그곳을 선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만 [배반]의 화자 라시드가 영국으로 떠나며 겪는 불필요한 사건들은 그리 자세하게 묘사되어있지 않다. 대신 작가는 영국인을 선택한 라시드와 조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비참한 상황을 대비시켜 "배반", Desertion 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키는 쪽을 택한 듯 했다.
[배반]은 단순히 이민자들과 그들의 운명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 식민시대의 상처가 대를 이어감에 따라 어떻게 대물림 되었고, 그것이 치유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히 적어내려간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삶 자체이다.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이 작품을 통해 한쪽를 옹호하고, 단순히 피해자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배반]은 압둘라자크 구르나에게 선택할 수 없었던 조국과 선택한 내 나라의 입장에서 적힌 이국적인 시선의 아름다운 회고록이다. 식민시대의 사람들에게 연민의 목소리를 보냄과 동시에 독자들이 겪어보지 못했던 그들의 아픔을 이해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스며든 작품이었다. 생소한 배경과 흥미로운 등장인물, 흡입력 있는 전개로 시선을 끌어당긴 작품인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배반]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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