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세 딸
엘리프 샤팍 지음, 오은경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3년 1월
평점 :
절판



아마도 하나님은 다채로운 수천 개 조각인가 보다.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면 사랑, 동정, 자비로 가득 찼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에게 물어보면 분노에 차 있다 하고, 인간들과 거리를 두며, 압도적인 힘을 가졌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하나님은 레고 세트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생각에 따라 신을 만들어 내는 것 같다.

- 72쪽


<이브의 세 딸>은 주인공 나즈페리 날반트오울루(통칭 : 페리)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전개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페리의 집안은 극단적 무슬림인 어머니와 자유로운 영혼의 아버지, 두 오빠로 이루어진 다섯 가족이다. 그녀는 옥스퍼드를 입학할 정도로 뛰어난 지성을 지닌 여성이며 신, 종교, 자아 등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피상적인 것들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페리의 현재 상황과 어린 시절을 거쳐 학부까지의 과거는 페리가 가진 고질적인 의문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되어줄까.

페리는 옥스퍼드에서 두 친구를 만난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이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쉽게 매료되는 쉬리와 그 누구보다 자신의 신(이슬람)을 사랑하고 굳은 심지로 히잡을 두르고 다니는 모나. 제목의 <이브의 세 딸>은 페리와 쉬리, 모나를 의미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이 셋은 아주르 교수의 신에 관한 세미나 수업을 함께 들음으로써 조금 더 가까워진다.

이미 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고 자신과 다른 생각에 관심이 없다면 이 수업을 듣지 마세요. 나는 물론 당신의 시간은 소중합니다.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세미나 수업입니다. ‘매일 아침 다시 학생이 되고픈 사람들**’을 위한 수업입니다. 만약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 지루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진다면, 이 말을 기억하세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활동은 앎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앎은 곧 자유이기 때문이다.***’

- 320쪽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 스피노자

<이브의 세 딸>을 읽으면서 처음부터 아주르 교수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느꼈다. 다 알고 있다는 듯한 그의 말씨와 주변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하고 있지만 관조적인 태도가 그랬다. 다만 강의 소개문에 인용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스피노자의 어구를 읽으며 페리와 쉬리, 모나의 본격적인 접점이 된 그의 사상이 궁금해졌다. 생소한 이름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그는 인간의 영혼 깊은 곳에 신적 본질이 깃들이 있다고 주장한 신비주의 사상가이자 철학자다. 그리고 스피노자는 범신론, 기독교에서 말하는 절대신이 아닌 자연질서 그 자체를 신으로 주장한 철학자다. 이 둘은 기독교 사회에서 배척당했다는 공통점을 가졌으며 인간의 의지와 이성을 믿는 경향을 보인다. 아주르 교수 스스로가 본인을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스피노자에 견줄만한 사상가로 여기고 있는 듯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주체적인 삶을 선택한 것으로 보였던 쉬리가 아주르 교수와 긴밀한 사이면서 행동대장이었다는 점이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특히 무조건적으로 신을 맹신하던 모나에게 종종 공격적인 발언을 일삼던 그녀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극단적인 두 사람 사이에서 페리는 더더욱 의문에 휩싸인다. 그렇게 페리는 현재까지 ‘나쁜 것을 보았다’, ‘나쁜 것을 들었다‘, ’나쁜 짓을 했다‘ 사이에서 스스로를 ’나쁜 짓‘을 한, 사악한 원숭이로 여기고 있었다. 과거 페리의 갈등은 결국 한 사람을 몰락시켰던 사건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특정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갈등의 양상은 비슷하다. 주인공은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과 내가 바라는 모습이 다를 때 느껴지는 괴리감으로 방황하며 다양한 고민을 가진 여성들과 연대한다. <이브의 세 딸>의 세 여성은 각자 다른 고민을 가졌다. 그러나 그들 고민의 근본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고민 또한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부터 발현된 것인지 돌아보게 된다. 주인공 페리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나의 모습, 그리고 당신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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