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8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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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동네 펴냄



(...) '우리가 평생 동안 듣게 되는 거짓말 가운데 가장 위험한 거짓말'은 균일성의 개념이라고 말해주었으니, 그때가 그녀에게는 열네 살 되던 해였고 아버지에게는 생애의 마지막해였다. "혹시 누가 너에게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 가장 사악한 이 별이 어쨌든 동질적이라고 하거든, 다시 말해 조화로운 요소로만 이루어져 모든 것이 착착 들어맞는다고 말하거든 곧바로 정신병원에 연락해라".

(...) "잊지 마라, 세상은 모순적이란다 : 난장판이야. 유령, 나치, 성자, 그 모두가 동시대에 살아 숨쉬지. 어느 한 곳에는 더없는 행복이 있는가 하면 바로 그 옆에는 지옥이 도사리고 있어. 이렇게 엉망진창인 곳은 다시없을 게다."

- 8쪽


[악마의 시 2]는 등산가 알렐루야 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알리 콘(알렐루야 콘)은 지브릴의 연인으로, 지브릴이 환각 속에서 계시자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마다 그의 곁을 지킨다. 인간의 형상으로 돌아온 살라딘 참차는 대천사의 모습으로 런던을 배회하는 지브릴을 찾아 나선다. 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쪽은 악의 화신으로, 한쪽은 대천사로 거듭난 이 상황이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자신의 옛친구와 외도를 범해 임신한 상태, 참차의 세상에 대한 원망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대체적으로 지브릴은 선으로, 살라딘은 선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되는 듯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악마의 시 1]에서 참차가 그토록 고통받아야했던 이유를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고통의 근원을 알고 싶었다. 참차는 거짓된 평화에서 살았고, 아이러니한 상황을 극복하기는 커녕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인도인이라는 정체성, 자신을 받아들이고 연속적으로 태어남과 죽음을 받아들인 지브릴과 달리 참차는 본연의 것을 모두 버리고 전진하는 것을 선택한다. 참차 스스로 불연속적인 인간을 선택하면서 영원불변의 "선"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바알의 열 두 창녀

/

마훈드의 열 두 아내

돈, 권력, 섹스, 죽음, 사랑. 천사와 악마- 그런 놈들이 왜 필요하지? 노벨문학상 수상자 싱어가 창조한 '최후의 악마'가 티셰비츠의 다락방에서 물었다: '악마는 왜찾아, 인간이 곧 악마인데?' 그러자 참차의 균형감각이랄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고방식이 반사적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천사는 왜찾아. 인간도 천사를 닮았는데?'

- 177쪽

[악마의 시 2]에서는 신과 인간, 천사와 악마의 분별이 몹시 난해하다. 대천사의 형상을 한 지브릴은 성적인 욕구는 물론 질투에 있어서도 그 누구보다 동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악마의 형상을 한 참차는 표면적이지만 친구의 아이를 가진 아내를 용서하고 무려 그들의 동거를 허락하는 대인배다. 지브릴의 환상에서 보여지는 마훈드와 바알이 그렇다. 마훈드는 아트리브에 성공적인 전도를 마친 후 자할리아로 돌아오며 그의 심복 할리드를 이용해 자할리아 신전의 여신을 베어버린다. 결국 자할리아 신전의 주인 힌드 또한 마훈드의 종교로 개종하며 마훈드와 지브릴은 "아류"였던 과거와 달리 "주류"로 거듭난다.

"주류"가 되면 바른 말씀이 지닌 본래 의미를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것일까? 마훈드의 서기 살만은 점점 그의 권력과 교리에 불만을 갖게 되었고, 지브릴의 계시를 임의로 바꾸며 점점 막장으로 치닫는다. 또한 다른 "아류"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자할리아의 유곽 내 시인 바알과 마훈드의 아내와 동명인 열 두 창녀들의 가정이다. 또한 자할리아의 남자들은 최고 권력자 마훈드의 아내와 이름이 같은 여자들을 취하며 만족감을 증폭시키는 사태에 이른다. 이는 마훈드(=신, 예언자, 대천사)가 완벽한 계시자는 아님과 동시에 영원한 "주류"는 없음을 보여주는 한 예시로 느껴졌다.


아예샤 하지의 생존자 중에서 바다가 갈라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증언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스리나바스가 다른 사람들이 보았다는 내용을 그에게 전해주며 쓸쓸히 덧붙였다: "우리만 자격이 없어 함께 가지 못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오. 선생, 바다는 우리를 가로막았소. 천국의 문처럼 우리 면전에서닫혀버렸소."-미르자 사이드는 그만 이성을 잃고 꼬박 일주일 하고도 하루 동안 울었는데, 눈물샘에서소금기가 다 빠진 뒤에도 눈물 없는 흐느낌이 오래도록 그의 몸을 뒤흔들었다.

그후 그는 집으로 돌아갔다.

-322쪽

일명 나비 소녀 아예사 이야기는 [악마의 시] 전체 서사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다. [악마의 시 1]에서 등장해 알리 비비 콘, 알라트라와 생을 공유하는 존재로 잠깐 등장했으리라 여겼던 나비소녀 아예사 이야기는 [악마의 시 2]로써 완벽하게 마무리된다. 아예사의 전생 알라트라의 이맘에 의한 피살은 "비시간의 시대"를 초래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시간이 흘러 현세의 아예사를 향한 무한한 믿음을 가진 신자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그녀를 따라 바다로 순례를 떠난다. 이는 마훈드 서사와 마찬가지로 아예사가 "아류"에서 "주류"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예사 서사는 마훈드 서사와 다른 점이 있다. 마훈드 서사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신앙을 받아들이는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단순히 계시를 전달받아 세력을 넓히는데 급급할뿐만 아니라 살인과 약탈도 서슴치 않는다. 반면 아예사 서사는 고지식할 정도로 무조건적인 믿음을 보여준다. 아예사의 계시는 명확한 전달자가 없다. "그렇게 해야한다"가 전부이다. 이 믿음은 어떤 조건이나 대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구원받기위한 거룩한 행진이었다. 다만 이 "구원"이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었고, 현실의 시각에서 순례자들은 익사체로 발견된다는 점이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마훈드 서사가 너무나 인간적이긴 했지만 믿는 자의 생명을 앗아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적다보니 끝도 없는 해석이 가능한 [악마의 시],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이 결코 짧다고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악마의 시]가 품고 있는 방대한 세계관과 다채로운 사상에 비해 짧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한 번 읽어서는 절대 정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작품이다. [악마의 시 2]는 여기서 마무리 하도록 하고, 곧 전체 서평으로 돌아오겠다.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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