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서유럽>의 저자 밀란 쿤데라는 본디 체코 태상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추방되어 프랑스로 망명한, 2019년까지도 프랑스 작가였던 체코 작가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4년 전 즘 읽은 기억이 있다. 작품 중 Einmal ist Keinmal(한 번은 중요치 않다, 한 번 뿐인 것은 전혀 없었던 것과 같다)이라는 독일 속담이 등장한다. 본디 이 문장은 실수, 역경 등 중요하지 않은 사건을 가볍게 넘길 때 사용하는 어구다. (예 : 사소한 실수를 했을 때, 한 번 정도는 괜찮잖아?) 그러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 토마시는 이 문장을 "한 번만 산다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 것과 같다"고 비약해, 쾌락을 탐닉하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당시 그런 토마시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의 <납치된 서유럽>을 읽으며, 밀란 쿤데라 작품의 등장인물들에 스며든 사상적 배경과 허무주의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납치된 서유럽>은 1975년 자국에서 추방당한 밀란 쿤데라가 추방 이전인 1967년에 체코슬로바키아 작가 대회 연설문 [문학과 약소 민족들]과 1981년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한 후, 1983년 프랑스의 지식인 저널 [데바]지에 기고한 시론 [납치된 서유럽]을 한데 묶은 작품이다. 때문에 <납치된 서유럽>에서는 유럽 강대국에 직접적인 압박을 받았던 나라의 자국민으로서, 자국(혹은 집권세력)으로부터 쫓겨나 망명된 이방인으로서 밀란 쿤데라의 입장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