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렬한 사랑에 빠진 사람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살아갑니다. 자신에게서 벗어나 사랑하는 대상 속으로 들어갈수록 행복과 기쁨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려 하고 자신의 신체 기관을 적절히 사용하려 하지 않는 상태란 의심할 여지 없이 미친 것이고 광기이며, 또한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습니다.
(...)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의 영혼이 그토록 갈망하는 천국의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곳에서는 영혼이 더욱 힘이 세져 육체를 집어삼키고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 이 세상에서살아갈 때부터 천국에서일어날 변화에 대비해 육체를 정화하고 약화시켰왔기 때문에 그런 일을 쉽게 해낼 것입니다.
(...) 기독교인이 되어 삶이 변해도 우신인 나의 영역은 제거되지 않고 도리어 완전해집니다. 이런 삶의 변화를 아주 조금이라도 경험한 사람들은 일종의 광기 비슷한 것을 겪기 때문에, 앞뒤가 맞지 않거나 인간의 관습에 어긋난 말을 하고 정신나간 소리를 하는가 하면 표정이 수시로 바뀝니다.
(...) 그렇게 광기에 빠져있는 동안 자신이 가장 행복했다는 것만 압니다. 그래서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을 한탄하며 그런 광기 가운데서 영원히 살아가게 되기만을 소원합니다. 미래의 행복을 살짝 맛보기만 해도 이렇습니다.
- 67장 기독교인이 받을 최고의 상은 광기다 中
르네상스 시대에 금서로 지정된 <우신예찬>의 '우신'의 연장선에 그들이 믿었던 '신'이 존재하고 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종교가 있었고, 지금은 잘 참석하지 않지만 종종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종교인 분들도 계시기에 일반화하기엔 어렵지만, 대부분의 이론은 현생은 죽음 뒤의 삶을 위한 준비 과정 정도로 보는 것이 보통이다. 현생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으로 제2의 삶이 완전히 갈리기 때문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신은 자애로우며, 온전히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생명이 붙어있는 지금의 삶보다 영혼이 떠난 뒤를 약속하며 절제하고, 순종적인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니. 에라스무스가 언급한 "제정신"은 "현실감각"이 아닐까 싶었다. 신의 요구대로라면 삶의 제한이 많아진다.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재화를 밝혀서는 안 되고, 교리를 어길 수도 있는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행위를 해서도 안 된다. 그렇게 신은 우리에게 부지불식간에 어리석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어리석은 자들만이 천국의 단 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은 나도 모르게 비소가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