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 돼!"- 가 전부였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능이 우리의 본능에 반하여 작동하는 것이, 말하자면 우리의 반본능이 우리의 본능을 대신하고, 더욱이 본능인 것처럼 작동하는 것이 이미 아주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안 돼!"- 그 즉시 어떤 망설임도 없이, 내 안에서 무엇인가 흐느끼며, 울부짖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의 흐느낌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결국 강박증적인 고통으로 변하여, 천천히, 불길하게, 서서히 퍼지는 질병처럼, 하나의 물음이 되어 내 안에서 더욱 뚜렷한 형태를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 혹시 네가 검은 눈동자를 가진 딸 아이로 태어나지는 않을까? 너의 작은 코 주위에는 주근깨가 엷게 흩어져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네가 고집 센 아들인 것일까? 너의 눈은 회청색 조약돌처럼 근사하고 힘찰까? - 물론, 나의 삶을 너의 존재의 가능성으로 생각할 경우에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말이다.
25-26쪽
숨 한 번 참지 않고 뱉는 말과 몇 번이고 반복되는 부정어를 통해 화자의 깊은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안 돼!", 화자는 인간의 반본능을 본인의 본능으로 주입시키기 위해 발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태어나는 것은 삶의 필수 요건, 그러나 화자는 더 이상의 생(生)을 부정한다. 나로 하여금 태어날 존재를 이 세상에서 박탈시켰다. 분명 후대의 존재의 가능성을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검은 눈동자를 가진 딸과 회청색 조약돌의 눈을 가진 아들을 어떻게 떠올렸을까. 화자는 되내이고 싶지 않았지만 몇 번이고 되내였을 고통의 순간을 체화시켰다.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 합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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