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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ㅣ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평점 :
과학은 많은 선물을 준다. 그러나 만사를 과학적으로 대하고 처리하는 것은 아무래도 성가신 일이다. 하지만 우리 자신과 문화와 제도에 대해서도 과학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말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자신의 바람이나 독단, 검증되지 않은 신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해 가야 한다.
416쪽, 17장 의심의 정신과 경이의 감성 中
迷信, 1.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으로 여겨지는 믿음. 또는 그런 믿음을 가지는 것, 2. 과학적ㆍ합리적 근거가 없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음. 또는 그런 일.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의 소개문은 "우리는 왜 과학이 아니라 미신을 믿는가?"로 시작한다. 갖가지 미스테리와 불가사의한 일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심증보다는 물증이 설득력을 얻는 현대에도 미신은 존재한다. 아직도 주변에서 민속신앙을 찾아 조언을 받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한차례 유행했던 MBTI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유형을 16가지로 나누어 몇가지 조건이 들어맞는다는 이유로 주변인을 MBTI에 대입해 분류하는 사람들, 도대체 왜 그런걸까?
미신은 흥미롭다. 검증과 실험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경이로운 것들에 접근할 수 있다. 때문에 실재하건, 실재하지 않건 그것은 중요치 않다. 다만 미신의 영역에 흥미를 느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적용시킬 수 있음은 맹목적인 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들에게는 다섯개 중 세개만 맞아도 신빙성을 얻는다. 저자 칼 세이건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통해 현대인들이 비과학적인 것을 타파하고 검증된 것을 바라보는 현명한 눈을 갖길 소명하며 이 책을 출간했다.
그렇다면 악령이 존재한다고 믿고, 미신에 집착하는 행위는 왜 우리를 위험에 빠뜨릴까? 과거 미신, 무지로 희생당한 사람들을 생각해보라. 과거 실재하지 않은 존재, 종교와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진' 이들의 화형이 주는 시사점을 떠올려야한다. 'demon'은 그리스 어로 '지식'을 뜻하기도 한다. (180쪽 7장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中) 에서 유추해볼 수 있었다. 마녀로 몰려 화형당할 경우 처형인 재산은 모두 몰수당했다. 때문에 마녀사냥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즉, 집권세력 이외에 지식이라 대구되었던 어떤 능력을 갖추었거나 혹은 능력 및 자산을 이용해 종교와 권위에 도전함으로 치부해 사형을 집행했다. 결론적으로, 중세시대 미신은 기성사회 유지를 위한 주입식 교육, 악령과 대치되는 종교적 교리로써 대중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비과학과 과학의 결합 가능성
출처 : iona institute ni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읽고 든 의문, 그렇다면 비과학과 과학이 결합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존재한다. 위 사진은 아인슈타인과 성직자이자 조르주 르메르트이다. 르메르트는 동적인 우주, 즉 팽창하는 우주에 관한 이론을 처음으로 제시한 인물로 우주학자, 천문학자이자 사제였다. 그는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톨릭의 가르침과 관련하여 르메트르는 자신의 이론을 신앙과 연결되거나 모순되지 않는 중립적인 것으로 보았다. 헌신적인 가톨릭 사제로서 르메트르는 과학과 종교를 혼합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두 분야가 충돌하지 않는다. (출처 : 위키백과)
라고 주장하며, 비과학과 과학의 경계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서로 독립된 이론으로 간주했다. 이 주장은 칼 세이건의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의 맥락과 유사하다. 그는 과학만능주의자나 회의주의자와는 달리, 무조건적인 이분법적 접근을 경계하며 인간은 불안전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한국에도 사제이자 과학자인 분이 계신다. 김도현 신부님, 이 분은 조르주의 경우와는 반대로 카이스트에서 학업을 마치고 신부의 길을 택하셨다.
다시 말해 경이를 느낄 줄 아는 감성을 이유 없이 배척하거나 버리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고 다양한 아이디어에 너그럽게 마음을 여는 한편, 증거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것을 사람의 제2의 천성으로까지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 될까?
451쪽, 의심의 정신과 경이의 감성 中
칼 세이건은 손자 Tonio에게 "너희가 살 세계가 악령이 없는 빛으로 가득 찬 것이 되기를" 소망하며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을 시작한다. 그리고 과학자로서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것은 "어둠을 밝힐 촛불이 되어 준 것은 과학을 하나도 몰랐던 부모님" 이라 언급한다. 그는 마음, 정신, 의식과 같은 관념론적인 개념을 무조건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 대한 지적 탐구를 소홀히 하지 않는 회의적 태도를 잃지 않는 자세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칼 세이건은 독자가 그저 혼돈에 빠질 수 있는 논거없는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말기를 바란다.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몰아쳐오는 암흑에서 우리 자신을 지켜주는 것(과학)은 그것밖에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본 서적은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