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눈뜨면 아침, 조금 쉴까 싶으면 하늘이 어둑해지길 몇 달째 보내고 있던 와중, [바다의 선물]을 읽었다. 차분하지 않은 마음으로 읽었지만 책을 덮을 즈음엔 한결 정돈된 기분이 들었다.
[바다의 선물]은 거대한 유기체같은 관계 속에서 여성으로서 해야할 몫과 가져야할 마음자세를 전한다. 작가 앤 모로 린드버그가 바닷가에서 만난 생물들에 대한 사색과 단상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각 단편은 비슷한듯 다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관계에 대한 단상이 주가 되는데, 타인과의 관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으로 스스로 고독의 기술을 연마하는 것을 꼽았다. 직간접적으로 타인과 연결된 일상을 살아가면서 혼자로서 시간을 향유하지 못한다면 그 시간은 고통으로 가득찰 것이다. 앤 모로 린드버그의 비유로 적자면, 아무리 잠시 동안만이라 할지라고 누군가와 헤어져있는 일은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 처럼 아픈 일이다. 그러나 그 순간을 버티면 우리는 더욱 충만한 시간을 맞이하게된다. 팔이 떨어져나간 불가사리의 새로 돋아난 팔은 상처없이 더욱 온전하다. 그렇게 무리 안의 '나'에서 고독을 유지하며 내면의 평정을 유지하는 '나'로서의 전환은 건강한 유기적 관계에서 필수적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관계를 인지하고 그것을 재발견 하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일은 필수불가결하다. 영원히 아름다운 것은 변하지 않는 모습을 간직한 껍질뿐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로를 발견했던 첫 시선을 제외하면 그 열정을 유지하는 것은 잠시뿐이다. 그러나 그 초기의 관계에만 집중한 나머지, 여타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아야한다. 관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앤 모로 린드버그는 망각했던 관계의 본질을 재확인하고 오롯이 단 둘이, 서로만 존재했던 그 시간을 보낼 것을 제시한다. 지난날의 관계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므로 덧없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다가온 현실을 사랑하고 품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관계로 인해 마음이 지쳐있을 때 되려 정신이 다른 곳에 가기를 바랐다. 이미 결론이 나버린 관계를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붙잡고 있는 마음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 책을 읽고, 혼자서 사색을 했다. 그리고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앤 모로 린드버그는 이 과정을 몇번이고 거듭한 끝에 그 깨달음을 [바다의 선물]을 통해 집필했을 것이다. 그녀가 느꼈던 관계의 허무함, 소모성을 자기 자신과 독대함으로써 극복했다. 사람과 사이가 멀어지고 가까워짐을 설명하다보면 관계의 염세성에 대해 언급할 법도 한데, 그녀는 되려 그것이 삶의 선순환으로 작용했음을 내비친다. 그래서 [바다의 선물]을 읽다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여성으로서 주어진 의무를 다하는 것에 최선을 다한다. 아름다움이 드러나려면 여백이 있어야한다는 구절이 있다. 여백이 있어야 일도 사물도 자기만의 의미를 갖는다. 마음의 거리를 아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 여백에 남은 흔적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린다. 그리고 내 삶의 균형을 찾는다. 이 것이 그녀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식이다.
무엇이 빠져나갔음이 그 자리를 채워줄 무언가가 다가옴의 전조임을 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혹은 그 것을 알면서도 빠져나간 것에 급급해서 주어진 시간을 허비해온 나날이 떠오른다. 지금도 나의 순간은 지나가고 있다. 영원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한 내 삶을 사랑하고, 마음의 소리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책을 덮는다.
본 서적은 리딩투데이 지원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