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쥘부채에 그려진 수국꽃 그림. 더구나 은빛 물감을 섞어서 반짝이게 그린 보랏빛 그림. 그것은 내가 맨 처음 세상에 나와서 만난 아름다운 세상, 멋진 그리이었다. 분명 남자아이로 태어났지만 어쩌면 내 마음속에는 여자아이가 하나 더불어 살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여자아이가 나를 평생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예쁜 것, 사랑스런 것을 보게 하지 않았을까. 미세하고 멀지만 곱고 아름다운 소리에 귀 기울게 했던 게 아닐까. 또 시인으로 평생 살게 하지는 않았을까, 뒤늦게 혼자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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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아름다운 눈을 가졌으리라.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있단 말을 참 좋아한다. 아마 나태주 선생님의 눈에 비친 쥘부채의 은결 보랏빛 그림이 선생님 마음에 닿은 까닭은 선생님의 눈이 은결 보랏빛이기 때문이다. 나태주 선생님이 시인이 되신건 어떤 운명이 아닐까. 아버지가 징집되시고 어려운 집안 형편에 외가와 본가를 오가는 어린아이였지만 병아리의 죽음에 목놓아 울고 꿀똥을 누는 강아지를 믿으며 돌아오지 않는 어른들을 기억하는 이 감수성 풍부한 어린아이가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문학사적으로도 큰 손실이었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기억이 저물어간단다. 기억이 저물어가는 나이까지 살아보지 않아서 남은 추억이 곁에서 멀어짐의 서글픔을 아직은 느끼지 못했다. 다만 [이제는 잊어도 좋겠다.] 작품을 읽으며 희미해져가는 기억의 끄트머리에 맺힌 기억을 책으로 남겨, 선생님께서 이제는 그것 들을 붙잡기위한 기력을 조금은 아낄 수 있다는 안도감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온기를 나눠주신 소년의 눈을 간직한 나태주 선생님께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