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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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적을 만날 때 눈을 감아버린다.

보뱅이 일상에서 만난 것들 속의 또 다른 의미를 찾는 작품, [환희의 인간]은 가장 본질적인 것들을 주제로 삼는다. 이를테면 죽음, 사랑, 신, 시간, 삶 등 영원불변의 것들이다. 미술관, 집시, 아버지, 죽은 연인, 책, 고양이, 심지어 설거지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삶에 대한 보뱅의 애정어린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적을 만날 때 눈을 감아버린다" 라고 수록했다는 것은, 반대로 보뱅은 기적의 순간에 실눈이라도 뜨고 있었다는 것 같다. 스쳐지나갈 수 있는 순간을 기적처럼 받아들인 작가였기에, [환희의 인간]과 같은 아름다운 작품을 출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결코 그 순간이 아니다. 죽음, 사랑, 아름다움, 이 모든 것들이 은총과 우연에 의해 불시에 나타날 때, 그 것은 결코 그 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순간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아주 일찍 시작됐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주 일찍, 그의 삶에 죽음이 찾아왔다는 것을.

- 50쪽

특히나 보뱅은 만사가 필연적 법칙에 의해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적 입장을 고수한다. 우연에 의해 불시에 나타난 것은 결코 그 순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은 태초부터 정해져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함을 종종 언급한다. 이는 보뱅의 가톨릭적 세계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보인다. 또한 연인 지슬렌의 죽음 이후 체념과 동시에 수용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던 그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의 문체는 종종 조금은 우울하면서도 즐거운 모순적인 경향을 보인다.


두 눈은 영원에 둘러싸인 채 나는 신비로우 대기를 삼킨다. 그리고 나는 쓴다. 이것이 대답 없음에 대한 나의 대답이요, 함께 일어나는 선율이며, 시간의 잎사귀에서 들려오는 날개짓 소리다. 당신이 더는 이 세상에 없기에, 나는 당신에게 미모사에 대해 이야기해줄 수는 없지만 미모사는 당신에 대해 아주 잘 알려준다. 모든 고결한 것들은 죽은 자들의 나라를 건너 우리에게 이르는 것이라고.

- 70쪽

그는 미모사라는 현생과 죽음의 매개체를 통해 죽음을 초월한 지슬렌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지슬렌의 죽음이 보뱅에게 얼마나 큰 사건인지 가늠하기 힘들정도로 죽음과 사랑을 밀접하게 연관시킨다. 작품 [그리움의 정원에서]를 감상하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지만, [환희의 인간] 에서 또한 지슬렌이 보뱅의 뮤즈로써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입에 담배를 물고있는 천사가 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씻은 컵 세 개를 손에 들고 항상 내게 말씀하셨다. "절대 세게 쥐면 안 돼. 깨지거든." …더러워진 그릇은 하루에 두 번 다시 태어난다. 그것은 일상의 수수께끼 같은 진부함이 밀려왔다 밀려 나가는 조수와도 같은 움직임이다. 나는 손으로 하는 '옛날 방식'의 설거지를 좋아한다. …아버지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눈을 감았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만이 느껴졌다. 나는 그 손길이 나를 온전히 보호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작아져 있었고, 몸과 영혼을 그 손에 맡겼다. 다소 묵직하고 주름진 그 손은 나의 피난처, 확신, 모든 믿음이 되어주었다.

127-129쪽

또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보뱅의 아버지는 분명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설거지를 하는 아버지를 천사라 칭하는 아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설거지를 조수와도 같은 움직임이라 표현한 보뱅도 만만치 않다. 이 작품에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단상.

세상은 성인들로 넘쳐난다. 순교자들 말이다. 나는 저 두 단어를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는 날마다 늘고 있는 그들을 '알츠하이머'라 부른다. 점점 더 늘어나는 그 병이 우리에게 기본으로 축소된 삶을 선물한다. 고단하고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일들, 물건을 사고 타인을 질투하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전부인 현재 생활의 모든 질서에서 우리를 해방한다. 이들에게는 삶이 아닌 삶, 한 번도 삶이었던 적이 없는 삶은 끝이 난 것 이다. 그들의 눈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두려울 정도로 열려있다. 그들이야말로 세상을 허물어뜨리는 형이상학적 질병의 먹잇감이다. 우리는 그들을 살아있는 보물처럼 여겨야한다. …비록 아버지는 나에 대한 기억을 모두 잃었음에도 내가 누군지 여전히 알고 계셨고, 나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133-135쪽

어린 동생이 죽었을 때, 죽은 자식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려다가 전염병이 옮는다는 경고와 함께 의사에게 뺨을 맞았다는 보뱅의 아버지 이야기는 어쩐지 울컥한다. 자식이 나보다 먼저 죽는다는건 상상도 못할 고통일 것이다. 비록 보뱅의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그러나 보뱅을 사랑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고, 죽은 자식을 가슴에 묻은 고통을 잊지 않았다. 그렇기에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 노인들을 가장 근본적인 것들만 품고 소박한 삶을 영위하는 성인이라 칭한 것이다. 죽음과 가까워지는 병을 앓는 사람들을 보며 보뱅은 우리 모두가 한 줌의 부스러기로 끝나는 존재들이라 일컫는다. 허나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살아있음의 기적을 발견할 수 있다는 보뱅은 세월의 흔적에 바스라진 그들에게서 천사의 흔적을 찾는다.


보뱅이 말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삶은 작고 옅은 것에서부터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Celion dion의 On ne change pas (우리는 변하지 않아)의 가사를 음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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