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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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느님, 전 당신을 증오해요.

마치 당신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당신을 증오해요.

349쪽

할 말이 너무 많은 작품. 독일어를 전공한


나로써는 종교와 인간이 밀접하게 연결된,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겪는 모든 방황이 신과의 관계로 결부되는 서사를 많이 접했기 때문에

좀 더 친숙했고, 마찬가지로 더욱 다양한 관점에서 접할 수 있었다.

증오와 사랑은 한 끗차이.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벤드릭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으면 증오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과 증오는 어떤 개체를 대할 때 따라오는 양가감정이다.

만남과 이별도 마찬가지이다. 인연을 맺을 때 따라오는 양가관계….

그녀가 말했다.

"사랑은 우리가 서로 만나지 않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에요…"

128쪽


세라는 벤드릭스가 죽었다고 판단한 폭격의 시점에서 신과 협상을 시작한다.

신을 믿게 해달라는,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간청하는 세라의 모습에서

앞으로 그녀의 삶에 신이라는 거대한 거미줄을 스스로 엮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후 역설적이게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스마이스를 통해 신을 증명하려 드는 세라.

대체 신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걸까?

신앙이 깊지 않은 나로서는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하지만 서양소설의 대부분이 그렇듯, 신과 인간에 대한 어떤 클리쉐인듯 하다.

마치 이브가 선악과를 입에 무는 순간, 그러니까 신과의 계약을 파기하는 순간부터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처럼.

재밌는 것은 세라의 죽음 이후 크롬턴 신부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카톨릭 방식으로 장례를 치루고, 미사를 드림으로써 세라를 기억해주겠다는,

어떤 특권의식을 가진 양 말하는 신부.(재밌게도 외양은 못났기 그지 없다.)

죽은 자와 깊은 인연이 없는 신부의 말은 벤드릭스에겐 기가 찰 것이다.

신부는 마치 세라가 죽기 전 크롬턴 신부에게 신을 강구함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을 내비치지만

벤드릭스의 입장에선 그저 그 고해성사로 인해 세라라가 죽음과 가까워졌을 뿐이였다.

그리고 어쩌면 세라가 살았을 인생일 수도 있던 버트럼여사의 등장.

바깥으로 부터 시작된 세라의 신앙이라는 올가미는 그 때부터였다.

진정한 신에 대한 사랑이 아닌, 전 남편에 대한 복수라는 버트럼 개인의 욕심으로 시작된 세라의 비극이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훔치면 큰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가지고 가서 읽어도 됩니다.

327쪽

세라의 머리카락을 소유해서 혹은 최신 기술로 치료를 받아서 반점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스마이스와

그녀의 동화책 혹은 어린 아이의 뛰어난 회복력으로 복통을 치유한 파키스의 아들의 모습은

벤드릭스의 입장에서 여러 얼굴을 가진 신과의 접촉이 일종의 미신임을 비춰주는 수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과의 지독한 인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벤드릭스.

참….


P.S

작품이 현실이였다면 아마도 가장 비참할 법한 인물은 헨리가 아닐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이했다고 판단해 스스로 불구덩이에 들어갔다가 나온 (구원받은) 세라의 모습,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실제로 맞이한 벤드릭스와는 대조된다.

벤드릭스는 신과의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연인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그에게 남은 감정은 증오가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임을.

여러모로 대조적인 양상을 갖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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