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숲속 수의사의 일 년 기록엔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과 시간이 서려 있다. 흐르고, 멈추는 것 모두. 제철을 맞은 식재료처럼 달마다 혹은 계절마다 골라 읽어도 좋다. 완독한 나는 계절을 거슬러 여행을 마친 기분이다. 한창 수학여행을 다닐 땐 자연권 관광에서는 재미를 못 느꼈다. 아마 뭘 봐야 하는지 몰랐던 거 같다. 지금은 돈을 주어 자연을 찾아갈 만큼이나 좋아한다. 너무 늦게 알았다. 점차 숲과 산을 밀어내고, 틈만 나면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나기 어려워졌다. 코로나 이후로 장기간 마스크 사용을 하면서 바깥 공기의 소중함을 느끼지 않나. 그중에서도 제일은 풀과 꽃내음을 바로 맡을 때다. 인간은 생활과 이익을 위해 동식물 터전을 빌려 쓴다. 되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니 '가져왔다'가 적합할지 모른다. 어찌 됐든 긴 안목으로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선 동식물이 살아갈 환경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문체엔 자연 속 이웃을 사랑하고, 품는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수의사를 거쳐 간 야생동물은 애써주신 마음에 보답하듯 보란 듯이 살아가거나 품에서 편안히 눈을 감는다.지난 제주 여행에서 태풍 속보가 난 바람에 비행기가 결항하고, 숙소에 발이 묶여 편의점 음식으로만 며칠 동안 끼니를 때운 적이 있다. 인간이 자연재해 앞에선 아무런 힘도 없다는 걸 다시금 느꼈다. 비바람이 베란다를 넘어 창문을 때리는 동안 책을 읽다가 문득 인간이 아닌 자연 안에서 태풍의 이점이 뭘까 궁금해졌다. 바닷속 산소 공급이나 해수 순환, 쓰레기를 육지로 밀어내기도 한다거나. 태풍이 마냥 나쁜 건 아니었나 보다.저자가 말하기를 들불을 일으키던 증기기관차가 다니지 않게 된 지 15년이 지나자 야생 꽃이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원인은 들불이 없어진 데 있었고, 사람이 모여 들불 지르기를 하면서 해결했다. 결과적으론 들불도 반드시 나쁜 건 아니라는 거다. 말마따나 자연이란 것은 우리 머리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