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어린이 때의 나는 더욱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인정받고, 존경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실수 하더라도 뭐든 혼자 해보려고 했다. 내가 경험했던 어린이의 세계는 칭찬엔 인색하고, 실수와 잘못엔 엄한 곳이었다.

어린이에게 나는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어른으로, 어른이라는 이유를 방패로 쓰지 않는 어른으로, 어린이의 생각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춘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다.

작가와 어린이의 대화를 보면서 나와 어린이가 했던 대화는 어땠는지 생각했다. 어린이보다 내가 조금 더 배웠다는 이유로 가르칠 수 있고, 익숙한 일도 많았지만, 어리숙하고 서툰 일도 분명히 있었다. 어떤 일은 사라졌으면 좋겠는 기억이기도 하고, 어떤 일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어른의 모습을 보며 커 가는 여러 어린이에게 어른으로서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싶은지 고민한다. 고민이 없는 거보다야 낫지만 때마다 바뀌고, 늘어나는 게 문제라고 보면 문제랄까.

오늘의 나는 어린이에게 어린이가 어려운 상황인 걸 알았을 때 모른 채 지나치지 않는 어른으로 남고 싶다. 비록 해결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최선은 해보고 싶다. 어린이의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는 걸 전하고 싶다.

내가 청소년기 땐 어리다는 이유로 반말하는 어른을 좋아하지 않았다.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말에도 애정과 관심이 느껴지는 어른이 있었으니 그건 예외다.

그래서 나는 초면엔 나보다 어린 사람을 만났을 땐 존댓말을 썼다. 가끔 존댓말을 쓰는 게 불편하니 그만해달라는 청소년을 만날 때도 있었다. 불편하게 할 의도는 아니었지만 나름으론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내가 조금 더 살았고, 경험했고, 안다는 이유로 조언이랍시고 각종 잔소리도 해 왔다. 그렇다고 어린이 삶 자체를 마음대로 재단하며 결정하기엔 나 자신도 하루하루가 선택과 후회의 연속인데다가 어린이를 나와 동등한 인격체라고 보지 않는다는 느낌이라 불편한 마음이 든다. 어린이에게 위협이 가는 사안이 아니고서야 어린이 시점에서 최선의 방향과 선택을 돕고 싶다.

나 또한 어린이를 접하면서 소수자에 대해 무지하고 둔감했는지 깨닫는 기회가 많았다. 주류이자 다수인 비장애인 성인을 기준으로 편안한 구조는 비주류이자 소수인 어린이, 장애인, 노약자 등에게 불편할 수 있단 생각이다. 그들이 편하면 자연스레 우리도 편해질 건데.

무례한 어른을 봤을 땐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기 주저하면서 아이가 같은 행동을 했을 땐 지도라는 이유로 불편한 말을 비교적 쉽게 뱉는다. 아이들은 바뀔 가능성이 아주 높으니까 가르쳐주면 되고, 알려줘야 한다. 그 때문에 나의 태도나 머뭇거림이 대상(어른이나 어린이냐)에 따라 달라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뿌리깊은 유교 사상과 교육을 받은 기성세대 보호자에겐 나 또한 어리다는 인식 때문에 하고 싶은 말 한마디가 꺼려지기도 한다. 당연히 일관된 태도를 갖춰주시는 좋은 어른도 많고.

연륜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좋아질 거로 생각한다. 그동안은 어린이에게 다른 기준으로 대하지 않도록 하고, 예쁜 말로 표현하려 노력해야지.

미성숙한 어른이라 후회하고, 사과하고, 다시 다짐하고 반복되는 실수를 한다. 지날수록 횟수가 줄 거라고 믿을 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